매일신문

[야고부] 막걸리

막걸리만큼 향토색을 진하게 드러내는 음식도 없을 것이다. 대부분 그 마을에서 가장 많이 나는 곡류로 막걸리를 빚기 때문에 맛과 색깔이 각양각색이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이름 붙은 막걸리만 약 300종에 달하고, 대대로 내려오는 가양주까지 합치면 700종이나 된다고 하니 아무리 주당이라도 그 10분의 1을 맛보기가 힘든 지경이다.

그런데 서민 술의 대명사인 막걸리의 위세가 요즘 대단하다. 몸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대기업들이 막걸리 시장에 뛰어들면서 전국적인 브랜드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쌀 막걸리뿐만 아니다. 오미자 막걸리, 홍화 막걸리에다 용기도 다양해져 종이 팩은 물론 캔 막걸리까지 등장했다. 골프장 하우스에도 막걸리가 등장한 지 오래됐다.

이런 막걸리 열풍에 최근 식품연구원이 기름을 부었다. 막걸리에서 항암 성분 '파네졸'을 발견했는데 연구 결과, 포도주나 맥주보다 10~25배 많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 발표 이후 편의점의 하루 막걸리 판매가 45% 이상 늘어났고, 일부 막걸리 주점은 판매량이 배로 뛰었다고 한다. 분위기가 너무 뜨거워지자 자숙론까지 나왔다. 일부 전문가들은 "채소의 웬만한 성분을 따로 분석해 보면 조금씩 항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온다"며 "항암 효능이 너무 부각된 게 아닌가"라고 했다.

어쨌든 막걸리가 다른 술에 비해 장점이 많은 것은 분명하다. 조선 숙종 때 6조 판서를 두루 역임한 이세화(李世華)는 자신의 집 이름을 막걸리라는 뜻에서 백주당(白酒堂)이라고 지었다. 천지에는 다섯 가지 색이 있는데 그 중에서 맑고 깨끗하며 질박하고 곧은 것은 오직 흰색뿐이라며 막걸리를 여기에 비유하여 노래를 불렀다.

'백발의 흰빛이여/ 막걸리의 흰빛이여/ 너는 내 마음에 꼭 드는구나/ 옥쟁반 진수성찬은 천금 값이라 장만할 수 없는데/ 막사발에 부어 마시는 일은 정말 초가집이라 마땅하지/ 내 흰빛으로 너의 흰빛을 얻으리니/ 막걸리야, 막걸리야/ 빈방에 늘 흰빛이 돌게 하기를'

백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삶이 초가에서의 청빈한 삶이요, 청빈한 삶에는 막걸리가 가장 잘 어울린다는 '막걸리 예찬가'처럼 그는 노년에 청백리로 뽑혔다. 우리의 술 막걸리, 몸에도 좋지만 이렇게 정신 건강에도 좋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음미한다.

윤주태(객원논설위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