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서태지, 조용필, 박근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햇수로 4년 동안 대선 예비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여야를 통틀어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평균 2위 그룹 지지도의 서너 배다. '박근혜 대세론'의 근거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정권 초반 2인자 반열에 올랐던 인물 가운데 집권 후반까지 그 자리를 지키다 대선 후보가 된 이는 없다는 점에서 박 전 대표가 내년에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 자리를 차지하면 전례를 깨는 첫 케이스가 된다. 그래서 호사가들은 박 전 대표가 내년까지 1위 자리를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지난 20여 년 동안의 사례를 근거로 든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YS가 부상한 것은 노태우 정부 3년차에 접어든 1990년 초 3당 합당 이후의 일이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여당 대선 후보가 되는 이회창 씨가 주목을 끈 것은 1996년 총선 때였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기라성 같은 주자들을 제치고 노무현 후보가 등장한 것은 임기 5년째인 2002년 대선후보 경선이 본격화되고 나서다.

대세론은 대선 때마다 있었다. 성공과 실패가 각각 두 번씩이었다. 성공한 케이스는 1992년의 'YS 대세론'과 2007년의 'MB 대세론' 등이고 실패한 것은 1997년과 2002년의 '이회창 대세론'이다. 성공과 실패를 가른 것은 '포용력' 내지 '지지 기반 확장성'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막판에는 결국 양자대결 구도가 펼쳐지는 대선에서 자기 식구들만으로는 승리가 어려운 만큼 다른 세력과 반대파들을 흡수하고 통합해야 하는 '플러스' 정치에 성공한 후보가 대권을 잡을 수 있다는 해설이 뒤따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으로 출범한 민자당 내 소수파인 민주계를 발판으로 민정계와 공화계를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경선에서 경쟁했던 박 전 대표가 경선 승복을 선언하고 다른 배를 타지 않음으로써 본선에서 보수층과 중도파의 지지까지 흡수, 승리할 수 있었다.

반면 이회창 현 자유선진당 대표는 한나라당 후보로 두 차례 나서 모두 초반의 절대적 우위를 지키지 못하고 본선 승리를 목전에서 잃어버렸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에게는 '포용력 부재'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쯤 박 전 대표는 이회창 총재를 향해 '1인 정당' '제왕적 총재'라는 비판을 쏟아내며 한나라당을 탈당한 적도 있다. 이 총재의 포용력을 문제 삼았다.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당시 대세론의 주인공이었던 이회창 총재 자리에는 박 전 대표가 있다. 그런데 박 전 대표에게서도 '플러스' 정치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친박' 진영에서는 폐쇄성과 배타성만 부각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다. 자기들 내부의 집단성과 결속력은 강화되었지만 외연을 넓힐 수 있는 여지는 더 줄어들어 보인다.

박 전 대표에 대한 비판이나 공격이 제기되면 친박 인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집단적으로 반격에 나서며 어떤 비판도 용납하지 않으려 든다. '지금은 박근혜 시대'라며 박 전 대표 역할론을 주장한 한나라당의 홍준표 의원 역시 이런 집단행동에는 우려를 표시한다. '과잉 충성'이라는 비판도 있다. 강경파와 충성 과잉파가 득세하면 중립적인 인사들은 접근이 어렵다. 그만큼 '플러스' 정치의 가능성은 낮아진다. 10년 전 대세론의 주인공이었던 이회창 총재를 향한 충성 경쟁도 과열이었다. 박 전 대표 주변에서도 그럴 싹수가 보인다는 지적이 있다.

박 전 대표가 4'27 재보선에서 빗발치는 지원 요청을 외면하고 '불개입'이라며 한마디로 선을 그은 것에 대해서도 두고두고 말이 많다. 많은 친한나라당 성향의 인사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박 전 대표의 '지도부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원칙론에는 당을 걱정하고 동료를 위하는 진정성이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한마디' 내지 '신비주의 화법'으로 불리는 박 전 대표 특유의 어법에 대한 지적도 많다. 그러면서 서태지의 신비주의 마케팅은 결국 실패로 끝이 났다고 한다. 숨김도 없고 가식도 없이 청중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국민 가수' 조용필이 서태지보다 더 낫다는 것을 국민들은 모두 다 안다. 그래서 국민들은 박 전 대표의 더 많은 이야기를, 더 낮은 데서, 더 자주 듣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박근혜 대세론에는 아직 보완할 점이 너무 많다.

이동관(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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