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수(51) 한화건설 상무는 30년 동안 현장을 누빈 정통 엔지니어 출신 건설인이다. 특히 대부분의 기간을 외국에서 일한 해외사업 분야의 베테랑이다. 하지만 부러워할 일만은 아니다. 그가 청춘을 바쳤던 곳은 필리핀, 나이지리아, 리비아, 보츠와나 등 개발도상국의 오지였기 때문이다.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태로운 순간도 있었다. 1998년 필리핀 현장에 근무할 때였다. "발신인이 없는 편지가 한 통 배달 됐습니다. 며칠 뒤에는 같은 내용의 독촉 편지가 또 왔죠. 자신들이 공산 반군이라며 매출액의 3%를 '혁명세'로 내라는 거예요."
먼저 현지인 직원을 협상 대표로 보냈지만 반군은 한국인 책임자가 와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가 직접 나서야 할 상황이었다. "오늘 밤에 돌아오지 않으면 한국대사관과 경찰에 신고하라는 당부를 해둔 채 어디인지도 모르는 시골로 끌려갔죠. 무장한 반군들을 마주하면서 겁도 났지만 애써 태연한 척 했습니다. 결국 두 달을 끌면서 75만달러 요구를 1만달러에 합의봤는데 다른 한국기업은 협상 실패로 사업장이 반군에 습격당했던 터라 한국 본사에서 아주 고마워했지요."
그가 허허벌판에 공장을 세우고 아파트를 짓는 건설인이 된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야만 하는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친이 작고하신 뒤 집안 형편이 무척 어려웠습니다. 매일신문을 배달하며 겨우 학업을 이어가는 처지였지요. 대학 진학은 꿈도 못 꿨는데 성적이 아까우니 원서나 내보라는 선생님의 권유로 재미 삼아 서울대에 지원했다가 덜컥 합격이 됐고, 동문회에서 입학금을 마련해줘 지금의 제가 있게 됐습니다. 물론 대학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죠. 허허."
평생 열사(熱沙)의 땅을 떠돌며 고생한 덕분일까? 그의 인상은 무척 다부져보였다. 하지만 그가 소개한 취미는 전혀 뜻밖이었다. "제가 요리를 곧잘 합니다. 김치도 담그고 회도 뜰 줄 압니다. 물론 오랜 객지 생활에서 터득한 생존 비결이죠. 나중에 건설 현장에서 은퇴하면 테이블 두세 개 있는 조그만 식당을 할까 합니다. 다른 취미는 글쓰는 것인데, 아직은 부족해 세상에 내놓을 형편이 안됩니다만 수필집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고교 문학동아리 시절부터 써온 글이 꽤 됩니다."
대구 토박이인 그는 옥산초교, 영신중, 대구고를 거쳐 서울대에서 농업토목을 전공했다. 토목 기사 1급과 건설안전기사 1급 자격도 대학 재학 중 취득했다. 1982년 대우건설에 입사한 뒤 필리핀 피나투보'바기오 현장소장, 나이지리아 복합 화력발전소 현장 소장, 본사 해외사업 담당 임원 등을 역임했고, 한화건설에는 지난해 2월 해외토목 담당 임원으로 영입됐다.
"흔히들 건설회사의 꽃은 현장 소장이라 하고, 샐러리맨의 꽃은 임원이라 하지않습니까? 저는 둘 다 원 없이 해봤으니 행복한 인생이지요. 제 막내딸도 토목을 전공했는데 건설은 젊은이들이 청춘을 한 번 걸 만한 분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해외 출장을 나간다는 그는 이달 9일에는 바그다드 재건 사업 수주를 위해 이라크로 날아갈 예정이다. "중동을 발판으로 한 해외시장 개척에 한국 건설산업의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열심히 뛰고 있는 만큼 성공 가능성은 높다고 자신합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문재인 방탄 동맹과 특권 계급의 꿈 [석민의News픽]
'핵볕'으로 돌아온 '햇볕정책'…與 '민주당 대북 굴종외교 산물' 논평
추미애 "정부 때문에 국민 고통…미리 못 막아 송구"
한덕수 "지역 거점 병원 '빅5' 병원 못지않게 키운다"
퀴어축제 조직위 뿔났다…"1개 차로만 이용" 경찰 통고에 가처분 신청 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