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강은 화려한 강이다. 특히 무태에서 검단 가는 쪽과 신천이 금호강과 만나는 곳에서 팔달교 가는 쪽이 아름다운 곳이다. 봄에는 강심과 둑에서 피어나는 연초록 뭇 야생초가 마음 아리도록 정답고, 여름이면 싱싱한 수생식물들의 푸른 기상에 가슴이 뛴다. 가을에는 갈대를 주인공으로 하는 식물과 철새들의 합창 소리에 눈과 귀가 한꺼번에 즐겁다. 겨울에는 초목은 죽은 듯이 숨을 멈추고 있으나 대신에 겨울 온갖 철새들의 지저귐이 소란스러워 생명의 위대함을 느낄 수가 있다.
나는 금호강을 자주 산책한다. 마음에 엉김이 오고 평정을 잃을 땐 반드시 이 곳에서 서성대기 마련이다. 보통 두세 시간 정도 걷는다. 다리가 아프면 강가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본다. 강은 산과 하늘을 보듬고 있다.
어느 무더운 일요일 혼자 강변을 걸어가고 있었다. 여름 날 금호강은 덥긴 해도 무성한 물풀들과 키 큰 수양버들 등의 교목들이 있어 매미 소리와 더불어 나의 기운을 솟구치게 하는 곳이다. 그 날의 강물은 장마 끝이라 콸콸 소리를 내며 흘러가고 있었고 강변 여기저기 작은 나무엔 상류서 떠내려온 쓰레기들이 흉하게 걸려 있었다. 물은 황톳물이 되어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았고 백로나 오리들도 보이지 않았다. 수초들은 펄 물을 뒤집어쓰고 있어 그 날 강 풍경은 평소의 아름다움을 다 잃어버린 채 흘러가고 있었다. 마치 사랑스런 여인이 침 흘리며 자다가 눈곱 낀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그런 느낌이었다.
산책을 포기하고 집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강가에 조그마한 돌덩이가 하나 보이는데 모양이 이상하였다.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돌덩이 위에 거북이 한 마리가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거북은 변온동물이라 해바라기를 자주 해주지 않으면 죽는다고 한다. 나는 "이 게, 웬 떡"하며 거북을 잽싸게 손으로 잡았다. 오면서 보니 나는 기쁜 마음인데 이 녀석의 얼굴은 처량하기 짝이 없다. 눈은 끔뻑끔뻑하는데 우는 것 같기도 하고 하소연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슬픈 얼굴이었다. 강변을 벗어나 샛길로 들어섰다. 손에서 거북이 느린 발짓이 느껴졌다. 이상하게 내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나는 다시 강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힘껏 거북이를 강물에 던졌다. 풍덩하고 물에 빠진 거북은 나를 한 번 되돌아 본 뒤 물속으로 사라졌다.
집에 돌아와 가족들에게 한바탕 자랑을 하였다. 잡은 거북을 되돌려 보내 준 나의 착한 마음을. 그러나 조금 뒤 마누라의 한숨 섞인 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왜 그래요? 예전엔 안 그랬잖아요? 괜히 잠자는 거북을 다 잡고. 또 그 걸 뉘우치지 않고 오히려 보내 주었다고 자랑까지 다하다니." 그 일요일은 무척 재수가 없는 날로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날이다.
권영재 보람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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