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은퇴대국의 빈곤보고서( 전영수 지음/맛있는 책 펴냄)

'노인 대국' 일본이 던지는 화두, 한국 노후는 안전한가

일본은 장수국가다. 평균 수명이 83세이며, 1억2천만 인구 중에 65세 이상이 2천900만 명이다. 거리는 노인들로 넘치고, 할머니들이 좋아하는 꽃집이 한 집 건너 한 집이다. 정형외과가 유독 눈에 많이 띄는 것도 고령사회의 특징이다. 얼핏 보기에 여유롭고 평화로운 일본의 도시 풍경, 그러나 그 안에서는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빈집만 756만 호(전체 주택의 13%), 두부 한 모 사자고 1㎞를 걷거나 택시를 타는 노인이 흔하다. 동네 점포가 폐업하니 어쩔 수 없다.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이혼으로 홀로 고독하게 병마와 싸우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는 노인도 있다. 자녀가 있지만 가난 때문에 서로를 돌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지혜로운 노인, 존경하는 인생 선배는 옛말이 되었다. 가난한 노인들은 집에서도 '대형 쓰레기' '살아있는 쓰레기'로 취급을 받기 일쑤다.

일본은 '연금 선진국'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노인들이 비교적 유유자적 노후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말의 근거는 탄탄한 연금소득이다. 실제로 일본 노인의 노후자금 81%가 연금소득에서 비롯된다. 일견 부러운 수치다. 1층 국민연금, 2층 후생연금, 3층 공적연금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일본은 연금복지국가다.

그러나 1층과 2층, 3층 연금을 모두 받는 사람은 샐러리맨 출신 1천400만 명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들 역시 현역시절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연금 액수는 큰 차이가 난다. 그나마 1천400만 명을 뺀 나머지 대다수 연금생활자들에게 연금생활은 곧 빈곤생활을 의미한다.

사회적 시선도 곱지 않다. 일부에 불과한 유복한 연금생활자들 때문에 대다수 노인이 유유자적한다는 비난받는 것이다. 가난한 현역 세대들은 노인들을 부양하느라 자신들이 가난하고 힘겹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노인을 미워하기도 한다.

일본의 연금 불신은 전 국민의 주제다. 현역 세대들 사이에서는 '내도 못 받을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전체 인구의 76%가 연금을 불신한다. 노인들의 연금 삭감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일본의 국민연금 수령자 900만 명 중 절반이 빈곤층이다. 900만 명과 별도로 120만 명의 고령자는 연금을 전혀 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일부 유복한 연금생활자들에 가려 전체노인이 부자노인으로 오해받는 것이다. 연금불신으로 피보험자 10명 중 4명이 연금을 납부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도 곧 닥칠 문제다. 더 내고 덜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고, 국민연금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많다. 샐러리맨들 중에는 지금까지 낸 연금을 모두 돌려달라는 사람들도 많다. 꼬박꼬박 국민연금을 붓고 있지만 그 혜택을 내가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난과 고독, 질병에 시달리는 노인들은 이제 사회를 향해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지혜롭고 온화하던 노인들이 흉악하고 거칠어진 것이다. 2009년 65세 이상 노인 범죄자는 4만8천 명으로 2000년 1만8천 명보다 2.7배 늘었다.

가난한 노인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해법은 노인 근로를 통한 소득 확보다. 그러나 노인이 평생 현역으로 남아 있기 위해서는 일자리가 많아져야 한다. 일본 정부는 노인들의 근로소득 확보를 위해 '정년연장'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일자리 확대 없는 정년연장은 젊은층을 실업으로 내몰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고령화사회의 해법은 일자리를 통한 근로소득 확보뿐이다. 문제는 노인들이 젊은이들에 비해 근로생산성이 떨어지고, 따라서 기업은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기업의 손해를 보전하기 위해 정부는 지출을 늘려야 하고, 결국 이는 세금부담으로 돌아온다. 여기에 젊은층의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성장을 계속해야 한다. 고령화는 한두 가지 문제가 아니라 총체적 일신을 요구한다. '정년연장'은 분명히 좋은 카드지만 이를 뒷받침할 현실이 허약한 것이다.

일본의 고령화 문제는 불과 몇 년 안에 우리나라에 닥칠 쓰나미다. 한국정부와 국민들은 노령화 사회를 맞이하기 위해 어떤 준비와 어떤 각오를 다지고 있을까. 벼랑 끝에 선 한국, 당신의 노후는 안전한가? 399쪽, 1만6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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