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영재의 행복칼럼] 번데기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대학 다닐 때 어느 일요일 자취하는 친구 집에 점심을 얻어먹으러 갔다. 하지만 결국 친구를 못 만나서 허기진 배를 안고 되돌아오다 번데기 장수를 만났다. 번데기 장수는 그냥 돈 받고 한 봉지씩 파는 게 아니라 '뺑뺑이'를 돌려 숫자가 나오는 만큼 번데기를 주었다. 그 날 '꽝'을 찍어 번데기도 못 먹고 쫄쫄 굶은 채로 하숙집에 돌아온 적이 있다.

누에는 이로운(?) 삶을 사는 곤충이다. 같은 곤충이라도 메뚜기나 사마귀는 알에서 깨어날 때부터 어미 모양을 하고 한평생 그 모습으로 산다. 그러나 누에는 대게의 곤충처럼 애벌레와 번데기 시기를 다 거치고 어미가 된다. 수양된 삶을 사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곤충과는 달리 번데기는 삶겨져 먹을거리가 되고 누에고치는 인간의 옷이 되고 만다. 그러나 누에의 희생은 비단이라는 화려한 열매를 만들어 그 비극을 승화시키게 된다.

인간의 일생은 메뚜기와 같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태어나 한평생 그 모습으로 산다. 그러나 교육하기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 상식적인 집의 애들을 누에와 같이 애벌레와 번데기 시절을 거치는 곤충처럼 키운다. 그런 교육과 훈련과 받고 자란 애은 어른이 되어서도 생각이나 행동이 남다르다.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희생할 줄 아는 인간이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는 집의 애들을 메뚜기처럼 덩치만 키운다. 그런 집 아이는 학교에선 규율을 어기고 선생님을 희롱하고 친구들을 폭행한다. 이런 애들이 커서 부자가 되면 불량 제품을 만들고 정치와 결탁하고 힘없는 자들을 깔보고 착취한다. 관리가 되면 부정부패하는 탐관오리가 되고 독재자가 된다. 돈도 못 벌고 공부도 못하면 불량배가 된다.

나비나 잠자리 같이 예쁜 곤충들이 행복하게 날아 다녀도 애벌레 시절은 참새나 족제비 같은 동물의 먹이가 되고 번데기 시절은 그 허물을 벗고 나오다 껍질이 안 벗겨져 숫하게 죽는다. 지금 나의 아이는 누에의 일생처럼 키울 것인가 아니면 메뚜기의 한살이처럼 키울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요즘 누에보다 못한(?) 인간들이 하도 많아서 이런 생각까지 해본다.

권영재 보강병원 원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