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까까머리를 하고 청춘의 꿈을 불살랐던 곳에서, 똑같은 꿈을 꾸는 후배들을 바라보는 건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는 부모 마음과 같습니다."
계성고등학교 농구부 김종훈 감독과 김종완 코치는 모교에서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김 감독은 1973년, 김 코치는 1991년 계성고를 졸업했다. 까마득한 후배들을 가르치는 감독과 코치, 그리고 최고의 선수가 되고자 훨씬 이전 학교를 거쳐 간 선배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있는 선수들. 그들은 서로 다른 시간을 보냈지만 '선'후배'라는 이름으로 단단히 묶여 있다. 계성고는 올해 전국 2관왕에 오르며 '동문의 힘'을 자랑하고 있다.
◆열악한 환경서 꽃피운 2관왕
26일 대구 중구 대신동 계성고 체육관은 한여름 무더위를 뚫는 힘찬 파이팅 소리가 흘러넘쳤다. 부산 중앙고와의 연습경기. 감독은 상대의 허점을 찌르는 전략을 세우느라 바빴고 코치는 선수들의 세세한 동작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 열중했다. 선수들은 미리 지시받은 작전을 실연하느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유니폼은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선수들은 8월 22일부터 일주일간 일본 나고야에서 열리는 제19회 한'중'일 주니어 종합경기대회 우승만 머릿속에 그렸다. 최창진(3년'가드)은 "계성고의 저력을 국제적으로 알리고 오겠다"고 했다.
대구 유일의 고교 농구팀 계성고는 올해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올해 치른 12차례 경기서 전승을 거뒀다. 5월에 열린 '제36회 협회장기 중고농구대회'와 한 달 뒤 있은 '제6회 고려대총장배'까지 석권하며 2관왕에 올랐다. 2002년 추계대회 이후 9년 만에 밟아보는 정상이다. 고려대 총장배는 3~5월 열린 여러 대회에서 4강에 진출했던 팀만 출전해 실력을 겨룬 왕중왕. 이 대회 우승으로 계성고는 한'중'일 주니어 대회 한국 대표팀으로 출전하게 됐다.
계성고의 2차례 우승은 열악한 지방 농구의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값지다. 농구는 수도권 집중화가 특히 심한 종목이다. 대구에는 초교 2개팀, 중학교 2개팀, 고교팀은 계성고뿐이고, 지방에서 명맥을 유지하는 팀은 대구에 계성고, 부산에 중앙고'동아고, 울산에 무룡고 정도다.
초'중학교 때 몸놀림이 좋다 싶은 선수는 수도권팀들이 죄다 스카우트해 버려 선수 수급이 원활치 않다. 팀이 별로 없어 연습상대를 구하기도 어렵다. 김종훈 감독은 "수시로 대학팀들과 연습경기를 갖는 수도권팀을 연습상대조차 구하지 못하는 지방팀이 이기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동문으로 뭉치면 못할 게 없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환경 탓에 계성고는 1970년대 이후 긴 침묵기를 거쳤다. 1922년 창단해 34년 한양(서울)에서 열렸던 대회에 출전하며 전국 무대를 밟은 이후 꾸준히 상위권 성적을 냈지만 우승은 넘기 어려운 고개 같았다. 전성기는 1970년대 찾아왔다. 당시 유니폼을 입었던 김 감독은 "70년대 초 계성고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팀끼리 겨루는 삼남대회서 우승하며 강자로 부상했고, 75년에는 전국대회 3관왕의 위업을 이뤘다"고 했다.
강팀의 밑거름을 놨지만 김 감독은 73년 졸업해 전국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보지 못했다. 이후 간혹 우승을 했지만 최강으로 불리기엔 모자람이 있었다. 김 감독이 모교로 돌아온 건 1999년이었다. 2001년에는 20년 후배인 김종완 코치를 영입, 명가 재건을 시작했다.
선배로 돌아온 감독과 코치는 냉혹했다. 백하민(3년)은 "잠시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오후 10시까지 1년 내내 훈련이 계속된다. 우승하면 준다던 휴가도 없던 말이 됐다"고 했다. 선수들은 지난해 겨울, 바로 앞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눈보라가 치는 제주도에서 뛰기를 반복하며 체력을 길렀다. 2월에는 대만에서 보름 동안 시합만 했다.
혹독한 훈련에는 이유가 있다. 김 감독은 "열악한 환경서 최고가 되려면 남들보다 더 많이 연습하는 방법밖에 없다. 특히 예민한 시기여서 조금만 틈을 주면 느슨해진다. 고통스러운 만큼 앞날이 밝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선배로서 후배들을 더욱 독려하는 것이다"고 했다.
훈련이 힘들어 그만두겠다면 고집스럽게 설득한다. "농구는 아이들의 인생이다. 잠시 힘들다고 포기하면 농구는 물론 다른 삶에서도 나약해진다." 두 달간 설득해 코트로 불러온 선수도 있다. 귀찮고 알아주는 이 없지만 후배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그만둘 수 없는 일이다.
김 감독이 엄한 아버지 같다면 김 코치는 형이며 어머니 같은 존재다. 선수들은 김 코치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김 코치는 선수들이 연습이나 시합 때 의자에 앉는 일이 없다.
정영삼(인천 전자랜드'현 상무)과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농구 국가대표인 임종일(성균관대)은 김 감독과 코치의 조련을 받은 대표적 선수다. 계성고는 올해 또 한 명의 걸출한 예비스타를 탄생시켰다. 최창진(3년)은 고교 랭킹 1위 가드로 꼽힐 만큼 출중한 기량을 갖췄다. 올해 우승한 2개 대회서 최우수선수상을 받았다. 일찍부터 서울의 고교팀에서 눈독을 들였지만 김 감독은 "계성고에서 농구를 해도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다"며 부모를 설득했다. 그 약속대로 최창진은 포스트 '이상민'으로 불리며 고교 대표 가드로 성장했다.
계성고의 전력은 당분간 국내 고교농구를 대표할 것으로 보인다. 계성중 창단(74년) 이후 전국대회 첫 우승을 합작한 박인태'맹상훈'최승욱이 2학년에 재학 중이고 힘든 훈련을 이겨낸 선수들이 모두 탄탄한 기본기로 다져져 있기 때문이다. 70년대'90년대 그리고 2010년대. 시대는 다르지만 동문으로 묶인 감독'코치'선수들은 힘겹게 일궈낸 최강의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려 굵은 땀방울을 쏟아내고 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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