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맥주 맛, 원래 그거 아니었어?…애호가들, 유럽산·수제 넘보는 이유는

보카치오 브로이는 색다른 맥주를 맛보려는 손님들이 많이 찾는 하우스맥주 전문점이다. 보카치오 브로이에서는 바이젠과 스타우트 두 종류의 하우스맥주를 제조해 판매하고 있다.
보카치오 브로이는 색다른 맥주를 맛보려는 손님들이 많이 찾는 하우스맥주 전문점이다. 보카치오 브로이에서는 바이젠과 스타우트 두 종류의 하우스맥주를 제조해 판매하고 있다.

맥주는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술이다. 지난해 소비된 맥주는 34억4천756만 병(500㎖ 기준)으로 19세 이상 성인 기준으로 환산하면 1인당 100.8병을 마신 셈이다. 맥주가 처음 들어온 일제강점기에는 맥주 한 궤짝을 팔면 쌀 한 가마니 값을 벌 수 있을 정도로 맥주 값이 비쌌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맥주는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대중적인 술로 자리매김했다.

맥주의 계절은 여름이다. 6월부터 10월 사이에 맥주의 70~90%가량이 팔려나간다. 특히 시원함과 청량감이 생명인 맥주는 삼복더위가 시작되는 7, 8월이 최고 성수기다. 날이 무더울수록 맥주업체의 경쟁도 뜨거워진다. 미녀 배우들을 앞세운 소주회사와 달리 맥주회사들은 조인성'원빈'현빈 등을 내세워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꽃미남 스타들이 맥주전쟁의 첨병으로 나선 상태. 이들은 앞다퉈 맥주를 마시라고 권한다.

하지만 술 권하는 분위기와 달리 국산 맥주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맛이 밍밍하다. 특색이 없다. 외국 맥주에 비해 맛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그래서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외국산 맥주를 찾거나 하우스맥주(식당'레스토랑 등에서 직접 만들어 파는 맥주)를 즐긴다.

◆국산과 외국산 맥주 맛이 다른 이유?

평소 맥주를 즐겨 마시는 회사원 최인선(29'여) 씨는 "외국 맥주가 다양한 미각을 자극하는 반면 국산 맥주 맛은 거기서 거기다. 그래서 국산 맥주는 거의 마시지 않는다. 과거에 비해 좋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외국 맥주 맛을 따라가려면 멀었다"고 말했다. 국산 맥주를 접하는 외국인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한 외국인이 개설한 맥주블로그에는 한국 맥주를 세계 최악의 맥주로 평가하고 있다.

국산 맥주가 이런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맥주 맛은 사용하는 원료의 종류'제조공법 등에 따라 달라진다. 원료 비율만 조금 바뀌어도 달라지는 것이 맥주 맛이다. 맥주 맛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많아 맥주 맛 차이를 초래한 원인을 정확히 짚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맥주회사들이 레시피를 공개하지 않고 있어 국산과 외국산 맥주 맛이 다른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주류업계 일각에서는 주원료인 맥아를 적게 쓰는 대신 옥수수'쌀 같은 부원료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 국산 맥주 맛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원료 가운데 맥아가 차지하는 비율이 66.7%를 넘어야 맥주로 분류된다. 또 독일은 16세기 내려진 '맥주 순수령(純粹令)'에 따라 맥아'물'홉'효모 외에 다른 물질을 첨가할 경우 맥주라고 부를 수 없게 돼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맥아 비율이 10%만 넘으면 맥주가 된다.

이렇게 된 데는 제도(주세법)의 영향이 크다. 주세법에는 맥아의 비율이 10%만 넘으면 되고 맥아 및 홉 외에 옥수수'쌀'녹말 등을 첨가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에 따라 국내 맥주회사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가격이 비싼 맥아 대신 다른 원료를 많이 사용해 맥주를 만든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또 2개 회사가 한국 맥주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독과점 형태(일본의 경우 맥주회사 수는 270개)도 맥주 맛의 질적 저하를 가져온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동안 독과점 체제에 안주해 연구개발에 소홀했다는 것.

하지만 국내 맥주회사들은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맥주회사 관계자는 "레시피는 대외비라 공개할 수 없지만 일본 수준으로 맥아를 충분히 사용해 맥주를 만들고 있다. 맥주 맛 차이는 원료의 차이라기보다 제조공법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것이 맞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볍고 깔끔한 맛을 선호한다. 반면 유럽 사람들은 깊고 쌉쌀한 맛을 좋아한다. 한국 사람들 입맛에 맞춰 맥주를 제조하다 보니 외국 맥주에 비해 깊은 맛이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맥주 맛이 떨어진다는 오해를 사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국내 맥주 애호가들의 입맛이 다양해지는 추세에 맞춰 깊은 맛의 맥주를 생산하는 등 제품 다양화에 힘쓰고 있다. 또 맥주전쟁이라 불릴 만큼 맥주시장 쟁탈전은 치열하다. 독과점 체제에 안주한다는 비판도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대안으로 등장한 하우스맥주

대량으로 생산되는 국산 맥주가 맛이 없다는 비판이 일자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하우스맥주다. 하우스맥주와 일반맥주는 제조'판매 방식에서 차이가 난다. 일반맥주는 대량으로 생산된 뒤 도매상을 거쳐 전국으로 팔려나간다. 반면 하우스맥주는 소규모로 생산되어 만든 곳에서만 판매된다. 제조'판매방식의 차이는 그대로 맥주의 맛에 반영된다. 전국에 걸쳐 판매해야 하는 일반맥주는 유통기한이 길다 보니 일반적으로 철저한 여과 과정을 거쳐 생산된다. 따라서 맥주 안에 효모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줄어든다. 효모가 남아 있으면 장기간 보관'유통되는 과정에서 상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하우스맥주에는 효모가 살아 있다. 그래서 일반맥주에 비해 걸쭉하고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고객들의 취향에 맞게 맥주를 제조할 수 있는 것도 하우스맥주의 장점 중 하나다. 소규모로 자주 생산하기 때문에 고객들의 요구에 따라 알코올 도수도 그때 그때 조정할 수 있다. 담글 때마다 맥주 맛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도 하우스맥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미다. 기본적인 맥주 맛은 맥아 비율'발효에 이용한 효모 종류'숙성기간 등에 의해 결정되지만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담그기 때문에 맛에서 조금씩 차이가 난다.

대구 수성구 두산동 보카치오 브로이는 대구를 대표하는 하우스맥주 전문점으로 땅거미가 내리면 색다른 맥주를 맛보려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라이브 공연이 시작되는 오후 7시 30분 이후에는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한다. 보카치오 브로이는 2002년 처음 문을 열 당시에는 아리아나호텔 지하에 있었다. 그러다 2009년 호텔 1층으로 올라왔다. 현재 이곳에서는 두 종류(바이젠'스타우트)의 하우스맥주를 제조해 판매하고 있다. 바이젠은 밀과 보리를 이용해 만든 맥주로 풍성한 거품과 은은한 과일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스타우트는 맥아를 사용해 만든 흑맥주로 부드러운 향과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쳐 바이젠과 스타우트가 완성되기까지는 평균 20일 정도 소요된다. 알코올 함유량은 4.7% 정도로 일반맥주와 비슷한 수준이다. 맥주가 많이 판매되는 여름에는 회전율이 빨라 숙성기간이 겨울에 비해 3~5일 정도 짧아진다. 숙성기간이 짧아짐에 따라 여름 맥주는 겨울 맥주보다 깊은 맛은 덜하다고 한다.

◆맥주 만드는 재미에 빠진 사람들

하우스맥주에 만족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집에서 직접 맥주를 만드는 사람들도 많다. 맥주 만드는 재미에 푹 빠진 사람들의 모임인 '마이크로 브루어리'(맥주 만들기 동호회 cafe.daum.net/microbrewery)에는 1만6천여 명의 회원이 있다. 회원들 가운데 상당수는 시원한 것이 맥주 맛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맥주 공부를 시작한 경우다. 운영진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영진(37) 씨는 국내에서 즐길 수 있는 맥주 종류가 너무 제한적이어서 좀 더 깊은 향과 맛을 느끼기 위해 직접 맥주 제조에 나섰다고 했다.

이에 대해 정광필(32) 아리아나호텔 주조장은 "맥주를 만드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은 맥주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시판 맥주 맛이 떨어지더라도 그냥 사서 먹었지만 하우스맥주를 통해 차별화된 맥주 맛을 알게 되면서 소비자들이 자기 취향에 맞는 맥주를 찾아 맥주 제조 단계로 나아갔다"고 말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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