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편리한' 신용카드, 듬뿍 준다던 혜택 얼마나 살려뒀나

수수료 인하 압박에 시달리던 신용카드사들이 최근 카드 수수료를 소폭 낮추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는 카드사들의 '생색내기 쇼'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가맹점들의 추가 인하 요구에 카드업계는 "이미 충분히 양보했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그동안 신용카드는 '편리한 플라스틱 지갑'이라고 불릴 만큼 순기능을 한 측면이 있다. 또 각종 혜택과 할인이라는 무기로 서민들 경제생활에 안착해 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금융상품에 공짜란 없다. 금리라는 개념이 붙으면 더욱 그렇다. 그동안 소비자들은 신용카드의 편리함을 누리기 위해 금전적 대가를 치러왔고 알게 모르게 많은 것을 양보해 왔다.

◆각종 혜택의 허점

카드업계 최대 히트 상품 중 하나가 선할인 카드다. 매달 약정금액을 사용하면 자동차나 가전제품을 최대 100여만원까지 할인을 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선할인 금액에는 할부수수료가 붙는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이를 잘 모른다는 데 문제가 있다. 선할인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 이용금액과 약정기간이 있다. 3년 약정으로 100만원을 할인받았다면 할인금액에 대한 할부수수료 3년치를 고스란히 내야 한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카드사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최대 30만원 가까이 드는 셈이다. 여기에 카드 사용금액 수수료를 더하고, 만약 연체라도 하게 되면 선할인의 의미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진다.

카드사들이 내세우는 가장 큰 무기는 주유 할인을 비롯한 각종 혜택. 특정 카드 가맹점에서의 할인 혜택 등이 소비자로서는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같은 혜택을 줄이거나 아예 없에 버리는 게 최근 카드사들의 추세다. 소비자가 카드를 만들 때 준다고 한 혜택을, 만들고 나서는 차근차근 없애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현대와 롯데카드는 놀이공원 입장권과 자유이용권 혜택을 내년 초부터 폐지할 예정이다. 신한'우리'농협'하나카드는 이용실적 한도액을 수십만원씩 늘림으로써 같은 혜택을 누리려는 소비자들의 카드 수수료를 더 받아 챙기고 있다. 비판에 직면하자 결제 실적에서 현금서비스를 제외(KB국민카드)하거나 포인트를 축소(삼성카드)하는 편법을 동원해 교묘하게 예봉을 피해가는 경우도 있다.

허술한 약관 때문에 소비자들이 딱히 대응할 길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신용카드 개인회원 표준약관 14조에 따르면 카드사는 신상품 출시 후 1년이 지나면 부가서비스를 변경할 수 있다. 카드사로서는 변경된 혜택 조항을 6개월 전에 홈페이지나 이용대금명세서, 우편서신 등에 고지하면 그만이다.

◆리볼빙의 함정

카드 금리가 만만치 않으니 소비자들로서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연체 금리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소비 심리를 간파한 카드사들이 내놓은 상품이 리볼빙 제도다. 돈을 갚지 못해도 연체되지 않는 서비스이다. 이용 금액의 5%에서 10%만 결제하면 남은 대금의 상환을 계속 미룰 수 있고, 목돈이 없어도 상환시점을 계속 연장할 수 있어 어찌 보면 소비자에게 유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금리란 잣대를 들이대면 전혀 그렇지 않다. 카드사들이 고시하는 최저 금리가 연 6~7%인 경우도 있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재정상태가 넉넉하지 않은 대부분의 서민들은 등급이 낮아 최저 금리와는 무관한 실정이다. 실제로 리볼빙 이용자들의 평균 금리는 연 20% 이상에 달한다. 최고 금리(현금 서비스 기준)로 보면 연체이자와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오히려 리볼빙 최고 금리가 더 높은 곳도 있는데 한 지방은행의 경우 연체금리가 25%인데 반해 리볼빙 최고 금리는 연 25.95%였다. 리볼빙보다 연체하는 게 더 유리한 것이다. "갚을 돈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시간을 두고 빚이 더 늘어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금융감독원 김건섭 부원장보의 조언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여전한 갈등

카드 수수료율 추가 인하 주장은 그동안 추진해 왔던 카드사들의 횡포에 가까운 상술에 대한 반발이다. 전국소상공인단체연합회는 "현재 대형 가맹점은 카드수수료의 일정 부분을 소비자에게 물려 1.5%의 낮은 요율이 적용되고 있는 반면 일반 가맹점은 이보다 높은 요율이 적용되고 있다"며 여전히 수수료율의 불합리성을 지적하고 있다.

카드 수수료 인하 발표 전 금융당국과 정치권도 카드사들을 압박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카드사가) 사회 인프라를 제공하는 기관인 만큼 기능을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영업해야 한다"고 지적했고, 권혁세 금감원장은 카드사의 대표이사들을 불러 모아놓고 금리 및 수수료 인하 방안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여기에 "높은 카드 수수료는 신용카드사의 사실상 담합행동이다"(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 "대형 가맹점은 매출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낮은 수수료를 적용받는데, 중소 가맹점은 매출 규모가 많다는 이유로 더 높은 수수료를 적용받는 것은 재벌이 많이 사면 깎아주고, 중소상인이 많이 사면 더 비싸게 파는 격이다"(김영환 지식경제위원장)며 여야 정치권도 가세해 왔다.

하지만 카드 수수료율 소폭 인하 발표 이후 카드사들은 "할 만큼 했다"고 버티고 있다. 카드사들은 "수수료 갈등이 잔존하는 이유는 정부가 시장경제의 원리를 깨트리고, 카드사가 큰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본질이 왜곡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카드사가 서민의 피를 빨아먹는 월가와 다를 바 없다고 매도하는 사회적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드사는 본연의 임무를 회복해야

"카드의 원래 목적은 할부금융에 있다"고 금융권 관계자들은 전한다. 하지만 카드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윤이 남지 않는 할부금융 대신 카드론이나 현금서비스 등 대출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이 여전히 문제시되고 있다. 여기에 조달과 대출금리 차이 등을 감안하면 카드사들의 금리가 너무 높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카드사에서 대출받는 고객 중에는 은행을 이용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카드사의 과도한 수익은 결국 서민의 등을 더 휘게 하는 요인이다.

가계부채 1천조원 시대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카드사의 서민대출을 줄이고 이를 서민금융기관이 흡수하게 유도하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사의 영역이 무너지면서 업권별로 지나치게 확대된 영업 분야를 제한하고, 카드사 본연의 역할과 설립 목적에 맞게 운영될 수 있도록 내부 정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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