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 아버지에게서 메일이 왔다. "다음 달 네가 있는 센다이에 들를 테니 잘 부탁해"라는 내용이었다. 보라색 ??장미로 테두리를 친 화려한 일정표도 첨부되어 있었다.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배워서 만든 것 같았다. 부모님이 오순도순 2박 3일의 일정표를 만들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일 년 반 전에 내가 센다이로 이사 올 때 찾으신 이후 첫 방문이다. 두 분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식당과 가볼 만한 곳 등을 물색했다. 지난 주말 드디어 부모님이 센다이에 오셨다.
결과적으로 나의 부모님 환영 계획은 허무하게 끝났다. 부모님이 기뻐한 것은 내가 소개하는 맛집이나 명소가 아니었다. 두 분은 산책 도중에 물푸레나무 꽃을 보고 기뻐하셨으며, 밤길에 갑자기 작은 개구리가 튀어나왔을 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호텔에 비치된 바느질 세트를 보고 "마침 집에 검은색 실이 떨어졌는데 잘됐다. 갖고 가야지"라며 매우 즐거워하셨다. 이러한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나는 힘이 빠졌다. 두 분은 나를 보기 위해서라기보다 그냥 놀러 온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딸로서 효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부모님은 처음부터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둘째 날은 "공부에 방해가 될 테니…"라며 두 분은 온천에 가셨다.
몇 년 전 내가 한국에서 살고 있을 때의 일이다. 문화적 충격 등이 겹쳐 한국에서의 생활이 힘들어 일본의 부모님에게 도망을 간 적이 있다. 귀국하기 직전, 대학과 회사에서 하던 일본어 강사도 그만두었다. 집에 돌아온 나를 어머니는 위로해 주었지만, 아버지는 나를 내쳤다. 한국에서의 힘겨웠던 일을 이야기하려 해도 아버지는 듣고 싶지 않다고 했다. "조금 쉬었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거라"라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세상에서 가장 잘 이해해 주리라 믿었던 부모님은 나를 이국땅으로 돌려보냈다. 외로움과 서러움에 북받쳐 나는 한국에 돌아온 후 오랫동안 집에 연락을 하지 않았다. 매일 근처의 강가에서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며 나날을 보냈다. 정말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가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한 말뜻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를 돌려보내고 아버지는 편하실까. 문득 어릴 때부터 항상 아버지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하나를 피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을 치게 된다. 눈앞에 닥친 것을 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만약 한국에서 계속해서 살아야 한다면, 앞으로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그것이 정말 알고 싶어졌다. 나는 한국의 대학원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동시에 벽보와 인터넷으로 학생들을 모아 무료 일본어 회화 교실을 열었다. 내가 80살까지 산다면, 앞으로 50년 이상 남았다. 이 시점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며, 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이후 대학원을 졸업하고 귀국 때까지 한국에서 보낸 2년 반 동안은 나에게 둘도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아이의 양육 방법과 부모와의 거리감이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일본에서는 자식이 성장하면서 부모와의 거리는 조금씩 멀어지고, 서로의 인생을 존중하며 자립해 간다. 서로 큰 기대를 하면서 의지하고 말이나 태도로 직접 애정 표현을 하는 한국의 부모와 자식 관계에 비해 일본의 부모 자식 관계는 조금은 차가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은 일본도 깊고 강하다.
셋째 날. 부모님과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기 싫어 "자, 그럼" 하면서 담백하게 돌아서는 아버지도, 몇 번이고 되돌아보며 손을 흔드는 어머니도 평상시와 다름없었다. 나도 한껏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 답했다. 지금까지 부모님과는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해 왔으나, 그때마다 항상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이 북받친다. 이럴 때 나는 현실에서 도망치지 말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되새긴다. '다시 만날 때까지 저는 이곳 센다이에서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고 다짐을 한다.
요코야마 유카/도호쿠 대학 대학원 박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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