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국가주권도 아웃소싱 '민주주의의 위기'

정부를 팝니다/ 폴 버카일 지음/ 김영배 옮김/ 시대의 창 펴냄

민주공화제 국가에서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민주공화제에서 국민은 주권자로서 국가공동체의 유지, 관리, 보수, 그러니까 국가안보, 치안, 행정, 외교 등에 대한 권리와 책임을 지며, 헌법에 따라 이들 권리와 책임을 정부에 위임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위임한 권리와 책임을 정부가 어떻게 수행하는지 감시하고 투표로 심판한다.

그런데 최근 수십 년 사이, 정부의 규모가 축소되면서 정부 기능을 민간에 위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정부가 서비스해 온 전기, 수도, 철도 등 공공시설이 민영화되는 것을 비롯해 일부 국가에서는 국방, 교도소, 치안까지 민간 기업에 넘어가고 있다. 국민이 정부에 위임한 기능을 정부가 다시 민간(기업)에 위임한 셈이다. 이 책의 원제목은 'Outsourcing Sovereignty' 즉 '주권 아웃소싱'인데,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국가 주권을 사기업에 다시 넘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 우리나라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의 경우 국가주권 혹은 국가기능 중 상당부분이 민간으로 넘어가 있다. 이라크전쟁 당시 미국이 이라크에 최고행정관으로 파견한 폴 브레머를 경호한 것은 미국 군대가 아니라 '블랙워터'라는 민간회사였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동부를 강타했을 때 치안을 담당했던 것도 미국 경찰이 아니라 '블랙워터'였다. CCA(Corrections Corporation of America)라는 회사는 미국 전역에서 63개 교도소를 운영하며 6만9천 명의 죄수를 수감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의 민간경찰은 연방정부와 각 주정부에 속한 경찰보다 많다.

공법학자인 지은이는 "정부 스스로 해야 할 일을 민간에게 넘겨줬을 때, 이들은 정부를 위해 무엇을 하는가" "정부는 주권을 아웃소싱할 권한이 있는가"라고 묻는다. 물론 이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르다. 더 많은 교도소를 운영하고, 더 많은 경찰을 고용하기 위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면 동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정부가 제공하는 치안서비스만으로는 자신의 재산과 생명을 지킬 수 없다고 판단한 사람들은 따로 비용을 들여 사설 경비업체를 동원하고 더 탄탄한 안전망을 구축하기도 한다.

지은이는 "국가권력이나 기능 중에 사적인 기업에 위임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있으며, 공적 영역이 민영화되면 민주주의적인 통제가 불가능해진다"고 지적하고 "효율성이라는 가치보다 헌법과 시민주권의 가치가 우위에 있음"을 강조한다. 전기나 수도, 철도 등 공공시설의 민영화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군대, 교도소, 치안 등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었던 우리나라에서는 시사하는 바가 큰 책이다.

현재 많은 선진국에서 민간용역업체는 정부의 '제4부'로 떠오르고 있다. 책은 정치적, 법적 분석을 통해 민간용역국가에 대한 올바른 시선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책의 제목은 '정부를 팝니다'이지만 지은이가 주장하는 바는 '정부를 팔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의 임무 중에는 사적기업에 위임할 수 없는 영역이 있고, 이것을 민영화할 경우 사적기업의 이윤추구 목표에 따라 운용되고 이는 곧 민주주의적 통제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지적은 꼭 국가임무 중 일부를 위임받는 민간기업뿐만 아니라, 민주적 절차에 따라 국가가 위임받은 권리 혹은 임무를 부정하는 '세력'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사회에서는 사적 이익을 위해 다양한 방식과 명분으로 정부의 권한을 무력화시키거나 빼앗으려는 세력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은이 폴 버카일은 뉴욕 예시바대학 교수로 공립 연구대학인 버지니아 주 윌리엄스버그의 윌리엄메리대학의 명예총장이며, 법무법인 보이스 실러 플렉스너의 고문이다. 행정법, 규제법 분야에 손꼽히는 법학자로 알려져 있다. 360쪽, 1만8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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