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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랑] 암 투병 중인 남편과 딸 간호하는 박인숙 씨

딸은 5층·남편은 7층, 병동 2층 사이 '비운의 가족'

모녀는 항상 마스크를 끼고 대화를 한다. 혈액암 일종인
모녀는 항상 마스크를 끼고 대화를 한다. 혈액암 일종인'비호지킨 림프종'진단을 받은 지민(가명)이가 면역력이 낮아 세균에 감염될까 봐 걱정돼서다. 어머니 박인숙(가명) 씨는 하루빨리 딸이 병을 훌훌 털어버리고 병원을 나설 수 있도록 매일 기도한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더니, 지금 우리집 상황이 딱 그런 것 같아요."

박인숙(가명'37'여) 씨에게 지난해 가을은 고통스러운 계절이었다. 9월 둘째딸 지민(가명'10)이가 혈액암의 일종인 '비호지킨 림프종' 진단을 받았고, 11월에는 남편 안민규(가명'43) 씨가 간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딸의 병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남편의 암 소식을 접한 박 씨는 한순간 삶의 모든 것을 잃은 기분이었다.

◆딸의 암

14일 오후 대구의 한 대학병원 소아암 병동. 침대 위에 앉은 지민이가 노트북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이제 5학년, 한창 새 학기를 준비하고 새 친구들을 사귀는데 설레야 할 시기인데 지민이에겐 꿈만 같은 일이다. 암 진단을 받은 뒤 지난해 9월부터 학교에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요즘엔 인터넷 채팅으로 만나는 사이버 친구들이 지민이의 유일한 벗이다. 지민이가 걸린 병은 비호지킨 림프종. 이 병은 세균과 바이러스 등의 감염을 막는 역할을 하는 면역체계인 림프 조직에서 발생하는 악성 종양을 말한다. 박 씨가 딸의 병을 눈치 챈 것은 지난해 9월쯤이었다. 간호조무사였던 박 씨는 지민이 사타구니 쪽이 불룩 솟아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처음에는 탈장이라고 생각했어요. 큰 병은 아닐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이를 데리고 대학병원에서 조직 검사를 받았고 림프종 진단을 받았다. 진단을 받은 뒤 바로 병원에 입원했고 사타구니와 겨드랑이에 있는 악성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두 번 받았다. 그렇게 암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10세짜리 아이가 암과 마주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항암치료가 시작되면서 평소 쾌활했던 아이의 말수가 줄어들었고 알약 수십 개를 한 번에 삼킬 때는 눈물을 보였다. 그래도 지민이는 씩씩하게 잘 견딘다. 친한 친구들 몇 명에게 아프다는 이야기를 했을 뿐 친구들이 "괜찮냐"고 연락하면 "6학년이 되기 전에 꼭 학교에 돌아갈거야"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친구들의 동정보다 스스로 병의 두려움을 몰아내려고 노력 중이다. 6개월 넘게 학교에 가지 못하자 지민이는 인터넷으로 '사이버 학습'을 한다. "나중에 친구들이랑 같이 6학년 수업을 받으려면 공부해야 해." 이런 딸을 볼 때마다 박 씨는 몰래 눈물을 흘린다.

◆남편의 암

지민이 병동은 5층, 남편이 있는 곳은 7층. 2층을 사이에 두고 부녀는 각기 다른 싸움을 하고 있다. 한 병원에 있지만 서로 자주 만나지 못한다. 면역력이 낮은 지민이가 세균에 감염될까 봐 남편이 병실에 오지 못하게 해서다. 남편은 강한 사람이다. 제약회사 영업을 하다가 일을 관둔 뒤 취업이 되지 않자 낮에는 주유소 아르바이트, 병원 야간주차 업무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지민이와 첫째딸 혜민(가명'16)이를 생각하며 자신의 건강은 제쳐 두고 열심히 일했다. "우리 남편은 B형 간염 보균자예요. 그래서 항상 건강에 신경을 썼어야 하는데, 먹고사는 게 바쁘다 보니…. 이게 다 제 탓이에요."

그는 2010년 간암 진단을 받았지만 1년 넘게 아내에게 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벌이도 시원치 않은데 자신의 치료비로 수천만원씩 쓸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난해 11월, 이사 준비를 하며 박 씨가 진단서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남편은 끝까지 숨겼을지도 모른다. 박 씨는 "이삿짐 싸면서 진단서를 봤는데 영어로 병명이 적혀 있었다. 많이 아팠을텐데 내색도 하지 않고 끝까지 암을 숨긴 독한 사람"이라며 하늘을 바라봤다.

지금 남편의 온몸에 암세포가 퍼져 있다. 췌장과 폐까지 암이 전이됐고 등뼈에도 암세포가 퍼져 걸음을 걸을 수도 없는 상태다. 자신의 생명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남편은 딸 걱정뿐이다. "지민이는 아직 어리니까 살 날이 한참 남았잖아요. 우리 지민이는 빨리 나아야 하는데."

박 씨는 지난해 간호조무사 일을 그만뒀다. 결혼하기 전부터 계속해온 일이었지만 딸 간호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관둬야 했다. 남편도 계속 병원 신세를 지고 있어 생활비는 지원이가 암 진단을 받은 뒤 보험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면 매달 생계비라도 받을 수 있지만 남편 명의로 된 집이 있어 집을 팔지 않는 이상 이마저도 불가능한 상태다. 지민이가 소아암 환자로 등록돼 병원비와 수술비 등 정부에서 의료비 지원은 받을 수 있지만 문제는 앞으로 생활비다. 박 씨는 남편과 딸의 건강을 앗아간 암이 하루빨리 떠나가기만을 간절히 기도한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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