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고교들의 대입 준비가 수시선발 확대 등 변화하는 대입 추세에 엇박자를 타고 있다. 수시 모집이 대세로 굳어지고 있지만 수능시험 성적 위주인 정시 모집 대비에만 주력하는 탓에 학생들의 진학 성과가 뒤처지고 있다. 성적 우수 학생이 몰리는 수성구 경우 이 같은 현상이 더욱 심해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매력 없고 성의 없는 학생부
학생부는 자기소개서와 함께 대입 전형의 대표적인 기초 자료다. 하지만 대다수 고교는 학생부를 부실하게 작성, 수시 모집 대비에 소극적이다.
수성구 한 고교에서 내신 성적 2등급 내외였던 재수생 A(19) 군의 학생부는 분량과 내용 모두 형식적이다. '특별활동 상황'에 기재된 것은 '주변 정돈을 잘한다', '급우들의 독서 활동을 돕기 위해 도서 공급에 힘씀' 정도가 전부였다.
'독서활동 상황'에 1학년 때는 아예 기록이 없고, 2학년 때 3권을 읽었다는 게 고작이었다. 학생부의 학년별 각 과목 점수와 석차 밑에 적도록 돼 있는 '세부 능력과 특기 사항'은 대학 측이 특히 눈여겨보는 부분이다.
하지만 A군 경우 '심화 보충 학습을 3단위 이수했다', 국어는 '문장 분석력이 뛰어남', 물리는 '탐구 설계 능력이 뛰어남' 등 한 줄씩 언급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학생부의 마지막 기재 사항인 '행동 특성 및 종합의견란'도 마찬가지다. 1학년 때는 '원만한 성격으로 책임감 있게 행동하고 성실하게 학업에 임하고 있음'이라고만 적혀 있고, 2학년 때 기록도 200자를 채 넘지 못했다.
반면 올해 고려대 신입생이 된 B(19) 양의 12쪽짜리 학생부는 A군과 천양지차였다. '특별활동 상황'에는 학급 간부 역할을 맡아 어떤 활동을 했는지, 국토순례, 일일 현장체험학습 등 각종 행사에 참여해 어떤 점을 느꼈는지까지 차곡차곡 정리돼 있었다. '교과학습 발달 상황'에는 과목별로 어떤 내용을 발표했고 어떤 장점이 있는지를 적었고 '독서활동 상황'은 2쪽에 걸쳐 인문, 사회, 과학, 예술, 체육 등 영역별로 50권이 넘는 책 제목과 감상까지 기록으로 남았다.
B양 다른 지역 특목고에 1년간 다니다 수성구 고교로 전학왔다. B양은 "전학오기 전 고교에서 익힌 대로 학생부 기록에 신경을 썼다"며 "학교에서 학생부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아 활동한 내용을 좀 더 쓰자고 선생님께 한참 매달려야 했다"고 했다.
A군과 B양의 학생부를 본 한 입시학원 관계자는 "대학 측은 학생부와 자기소개서, 교사추천서 등을 서로 대조해 평가한다. A군 경우 학생부에서 읽을 것이 없으니 다른 서류를 열심히 준비한다 해도 낙제점"이라며 "A군이 전년도 수시 모집에서 수도권 여러 대학에 응시해 고배를 마셨다는데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간다"고 안타까워했다.
한 고교 교사는 "정규 수업과 방과후 수업, 교과 연구 외에도 각종 잡무를 떠안고 있어 여력이 없다. 이런데 교과 담당, 담임 교사가 학생부를 자세히 적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며 "3학년이 돼서야 지난 학년의 봉사활동이나 수상 경력 등을 담은 자료를 내밀며 학생부를 정정해 달라는 학부모의 요구도 많다"고 했다.
◆대학별고사 대비 부실
김모(46'여) 씨는 지난해 수성구의 한 고교 3학년이던 큰아들이 경북대 수시 모집의 AAT(대학진학적성검사)를 준비하느라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치민다.
처음 시행되는 시험이라 관련 자료를 구하기 어려웠던 데다 대구시교육청이 이 시험에 대비해 마련한 '대입적성교실'도 정원이 차버려 참가하지 못했다. 김 씨가 더욱 불만스러웠던 것은 이 같은 상황을 방관한 학교 측 태도였다.
그는 "시교육청이 여름방학 때 각 고교에 AAT 관련 자료들을 보냈다는데 정작 학교에선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며 "알고보니 받은 자료를 살펴보지도 않았더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매일신문이 대구 재수생 46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구 고교의 대입 준비 실태' 설문조사 결과 진학 지도에 대한 불만이 그대로 드러났다. 설문에 응한 재수생 중 387명(83.6%)이 출신 고교에서의 진학 상담이 불만족스러웠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교사가 각 대학의 입시 전형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답변이 158명으로 가장 많았다. '상담에 성실히 응하지 않았다(83명)', '교사가 수시 모집보다 정시 모집을 고집했다(65명)'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한 고교 교사는 학교와 교사의 안일한 사고 방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서울 고교 진학 담당 교사들은 대학 측에 전화를 걸어 입학전형을 바꾼 배경까지 캐묻지만 대구는 입학전형이 바뀐 사실조차 모르는 교사들이 있다"며 "학교 측에 논술, 면접 등 수시 모집 대비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소귀에 경 읽기'"라고 말했다.
온라인 교육업체 메가스터디의 2011학년도 수도권 15개 대학 합격자의 합격 전형 분석에서 수성구는 논술 준비에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적 우수 학생이 몰리는 서울 송파구와 강남구, 서초구 경우 수시모집 논술형 합격자가 모두 20%를 웃돌았으나 수성구는 15%에 그쳤다. 부산 해운대구(19.1%), 동래구(16.6%), 남구(19.3%)에도 못 미치는 결과다.
한 입시학원 관계자는 "진학 담당 교사 연수 등을 통해 복잡한 수시 모집 전형에 대해 교사들이 잘 알도록 하고 대입 관련 자료를 누적 관리해 학생들에게 제공해야 한다"며 "학생부와 수시 모집 대비 프로그램을 잘 챙기는 다른 지역 고교를 찾아다니며 노하우를 배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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