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회관에서 지난주부터 전시되고 있는 '반쪽이의 상상력 박물관전'에서 유독 눈에 띄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10년차 부부'라는 작품인데 도끼 두 자루로 부부의 머리 부분을 만들어 서로를 겨냥하고 있는 듯 만들어놓았습니다. 부부에게 도끼라니요. 어이없다기보다는 너무나 적절한 비유인 듯해서 하하 웃음이 절로 났습니다. 전시를 함께 관람한 친구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라고까지 했습니다. 그 친구가 올해로 꼭 결혼 10년차이기 때문입니다.
결혼 10년차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햇수를 살아온 부부들의 경우 부부싸움이 정말 잦습니다. 특히 맞벌이로 생활하면서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경우에는 정도가 심합니다.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힘에 부치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일상을 둘러보고 위안할 시간은 한시도 없습니다. 평일에는 퇴근 후 아이들을 먹이고 씻겨 재우기 급급하고, 주말은 밀린 일과 집안 대소사를 챙기다 보면 금세 지나가 버립니다.
연애할 때나 신혼 때는 서로의 감정을 배려하고 또 조심하곤 하지만 10년 가까이 살다 보면 그런 섬세한 감정도 없어져 버립니다. 꾹꾹 눌러 참아온 일상의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폭발할 곳 또한 배우자밖에 없습니다. 주말부부로 사는 저희 부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주말에만 만나니 더 애틋하지 않으냐고들 하지만 그런 감정 또한 신혼 초 잠시뿐이었습니다. 아이들이 하나 둘 태어나고부터는 더 여유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남편은 농번기만 되면 시골로 내려가서 시어른들의 농사일을 돕습니다. 결혼식 등의 크고 작은 집안 행사가 대구에서 있을 때면 여러 가족이 집으로 모여듭니다. 차만 간단히 마시고 헤어지는 도시식 만남이 아니라 끼니와 잠자리를 같이하는 시골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도 온전히 제 몫이었습니다. 대구 들르지 말고 주말에 시골로 바로 내려갔다가 바로 올라가라고 소리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남편은 꿋꿋하게 주말마다 대구에 내려오고 농번기에는 시골로 향합니다. 시골로 바로 내려간 적은 다행히(?) 아직 한 번도 없습니다. 한발 물러나서 생각해 보면 남편도 참 고단한 사람입니다. 평일에는 불 꺼진 기숙사에서 쓸쓸히 홀로 보내고 금요일 저녁만 되면 부리나케 대구로 내려와야 합니다. 평일에 못한 아빠 역할을 하느라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는 것도 스스로 자처합니다. 주말 아침에는 제일 먼저 일어나 시골 어른들을 챙깁니다. 참 피곤한 삶이다 싶습니다.
인생 선배들의 조언도 여러 가지입니다. 대부분 요즘 그런 시골식 문화를 챙기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남편한테 적당히 하라고 얘기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시골 어른들이 평생 사실 것도 아니고 남편이 시골 사람이기 때문에 남편이 착하고 가정적일 수 있으니 받아들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주말부부는 제가 선택한 생활이고 남편이 술 마시고 놀러다니느라 주말에 집을 비우는 것도 아닌데 싸울 일도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말을 내뱉기 전에 한 호흡만 늦게 해도 상처를 주고받지 않을 텐데 싶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다행히(?) 둘 다 불같이 싸우더라도 금세 잊어버리는 성격인지라 지금까지 큰 탈 없이 살아오고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
지난주 이사를 앞두고 남편이 제안해왔습니다. "우리 새집에서는 싸우지 말고 기운을 바꿔서 잘 살아보자"라고 말입니다. 이사를 하고 새집에서 맞은 첫날, 남편과 오붓하게 맥주라도 한잔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계획해볼까 했지요. 그런데 방에서 애들을 재우다 저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거실에 나와 보니 남편이 TV 앞에서 쓰러져 잠들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 TV 틀어놓고 잠들었구나 싶으니 욱하는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만날 이러니까 피곤하지. 잠자리 좀 제대로 챙겨 자." 자다가 짜증을 들은 남편 또한 버럭 화를 냈습니다. 남편은 일상에서의 제 말투에 짜증이 섞여 있다는 것이 제일 큰 불만입니다.
아무튼 새집에서 맞은 첫날 밤, 또 싸워버렸습니다. 이것이 또 징크스가 되어 매일같이 싸우게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 남들의 부부싸움에는 조언도 잘하지만 막상 제 일에는 한없이 이기적이 되어버리니 말입니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어떤 식으로 살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때쯤에는 지금처럼 도끼보다 더 강한 말로 생채기를 내고 있지는 않아야 될 텐데 싶습니다.
임언미/대구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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