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매카시 미국 상원의원은 1950년 2월 웨스트 버지니아 주에서 "여기 205명의 명단이 있다. 이들이 공산당원이라는 것을 국무장관이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금도 국무성에서 정책 입안을 하고 있다"고 연설했다. 국무장관이 국가 반역에 관여하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내용으로, 그의 연설은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 명단을 확인할 수 없었으며, 확인하려는 그 자체가 의심의 대상이었다. 무명의 매카시는 공산주의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는 구세주로 등장했으며, 미국은 빨갱이 색출을 위한 집단 광기에 휩싸였다. 그 배경에는 당시의 국제 정세도 작용했다. 1949년 9월 소련의 원폭 실험 성공, 10월 중국 공산정권의 성립, 다음해 6월 한국전쟁 발발 등 공산주의가 파죽지세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의 주장은, 중국에 공산정권이 수립된 것은 빨갱이로 가득 찬 국무부의 정책 실패의 결과라는 음모론을 낳고, 국민들이 집권당인 민주당의 외교 정책에 의구심을 가지게 했다. 그 결과 1952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은 20년 만에 정권을 잡았고, 매카시도 재선에 성공했다.
공화당 정권하에서 그는 상원의 상설조사분과위원장이 되어 민주당 내의 온건파, 예술가, CIA, 육군 등에 대해 무차별 공격을 퍼부었다. "그에게 물리면 패가망신한다" "공산주의자로 몰리기보다 죽는 것이 낫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그가 지목한 단체와 인사들은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혀 공직은 물론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했다. 그의 주장에 반대하면 공산주의자로 모든 것을 잃게 되고, 동조하면 반공 히스테리에 한몫을 하게 된 것이다. 빨갱이 색출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그의 무차별 공격은 1930년대 대공황 극복을 위해 좌(左)클릭한 미국을 우(右)로 되돌리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1954년 2월부터 4월까지 진행된 육군을 상대로 한 청문회에서 그의 거짓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청문회를 통해 그의 허세와 거짓이 미국 국민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그해 12월 2일, 상원은 그에 대한 비난(견책)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 후에도 그는 상원의원의 자리는 유지했으나, 술에 찌든 생활을 하다가 1957년 5월, 48세에 병사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기는 하지만,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인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고 미국 사회를 의심과 증오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그가 지목한 사람들 중에 실제로 소련의 스파이 활동을 한 인사가 있었던 것이 그 후에 밝혀지면서 그에 대한 재평가도 나타났다. 매카시는 혜성처럼 나타나 미국 사회에 용공(容共)의 회오리를 몰아치고 유성처럼 사라졌으나, 최근 그의 악령이 한국에서 부활하는 듯하다. 새누리당의 한기호 의원은 국회의원 가운데 30명 정도의 종북주의자가 있으며, 이를 가려낼 방법도 있다고 했다. 매카시 발언의 판박이다. 이에 대해 노회찬 의원은 종북주의의 원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고 반격했다. 여기에 북한까지 가세하여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러한 매카시즘 논쟁은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경선을 둘러싼 부정선거 논란에서 시작되었다. 새누리당은 통합진보당의 내부 분란을 종북주의로 발전시키고, 나아가 민주당을 함께 싸잡아 야당 의원에 대한 사상 검증으로 증폭시킨 것이다. 새누리당은 이러한 색깔론 공세를 대통령 선거 때까지 끌고 갈지 모른다.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미국 공화당이 20년 만에 정권을 잡았듯이, 이념 논쟁은 사회를 보수화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남북 분단이라는 한국적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념 논쟁은 경제를 비롯한 민생 문제를 수면 밑으로 밀어 넣는다. 가난한 유권자가 부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 정당에 투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가난한 서민들은 부자 정당 새누리당에 더욱 많은 표를 주었다.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당은 이것을 노리고 있는 것일까. 보수 세력이 선거 때마다 고장 난 레코드를 돌리듯 반복되는 한국 정치의 예견된 퇴행이다. 이번 대선을 지켜볼 일이다.
계명대교수·국경연구소 소장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
검찰, '尹 부부 사저' 아크로비스타 압수수색…'건진법사' 의혹 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