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활의 고향의 맛] 여름바다, 그 황당함에 대하여

청춘들로 득실…숙박비 비싸고 좋은 횟감 구하기 어려워

머리 희끗희끗한 도반들이 캠핑 장비를 챙겨 여름바다로 떠나 본들 청춘을 돌려받지는 못한다. 여름바다는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다. 산드라 디와 트로이 도나휴가 청순한 연기를 보여 주었던 영화 '피서지에서 생긴 일'을 봐도 그렇고, 미찌 게이너와 존 카가 나오는 '남태평양'이란 뮤지컬을 봐도 "아하! 여름바다는 젊은이들의 몫이구나" 하고 금방 느끼게 된다.

사람들은 여름바다에 왜 그렇게 열광하는가. 여름바다에는 무엇이 있는가. 곰곰 생각해 보니 그건 사람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사실 바다보다는 푸른 산 계곡이 훨씬 시원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바캉스 철만 오면 너도나도 배낭을 둘러메고 바다로 달려간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기 위함이다.

여름바다의 생명은 길어야 한 달 남짓이다. 어쩌다 장마가 길어지면 여름바다는 맥이 풀려버릴 때도 있다. 그러나 여름 사람들은 날씨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날이 흐려도 그만,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어도 그만이다. 기실 그들의 목표는 여름바다가 아니라 바닷가에 모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무엇을 하는가. 물어볼 필요가 없다. 청춘과 사랑의 깃발을 흔들며 역사를 만들어 나간다.

역마살이 끼어 있는 사람은 엉덩이가 들썩거려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한다. '여름바다는 청춘들에게 내주어야지' 하면서도 그새를 못 참고 이틀 여정으로 서해 일대를 한 바퀴 돌아온 적이 있다. 예상했던 대로 어시장에는 우리가 먹어 봤으면 하는 횟감 생선이 없었고 펜션의 하룻밤 숙박비는 비수기의 세 배로 껑충 올라 있었다. 사정이 이 정도면 여름바다는 아예 '패대기를 쳐 내다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바닷물의 온도가 올라가면 고기들도 서늘한 깊은 바다로 바캉스를 떠난다. 사람들이 도시의 가마솥더위를 피해 바닷가로 몰리는 것과 같다. 그런데 왜 해파리란 놈들과 이안류란 낯선 이름의 파도는 먼바다로 떠나지 않고 갯가로 피서를 나와 이렇게 극성을 부리는 걸까.

그러니까 근해와 연안에서 그물질하는 어부들에게 고기가 잡힐 리가 없다. 이름난 어시장에도 생선이 귀한 건 마찬가지다. 도반들은 길가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더라도 횟거리 생선만은 감성돔'농어'광어'우럭 등 자연산 큰놈들을 선호하는데 손으로 집을 만한 게 없으니 여름 자체를 포기해야 할 판이다.

그렇지만 어쩌나. 말썽부리는 자식이라고 후손 명단에서 삭제할 수 있은가. 성경에도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가 있지 않는가. 바닷가의 숙박비가 비싸고 갯가에 생선 횟감이 아무리 귀하더라도 이글거리는 태양 에너지가 충만한 여름을 우리 손으로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37℃를 오르내리는 더위를 견디다 못해 여름바다를 향해 또다시 길을 나서기로 했다. 열대야란 이름의 난폭한 밤 더위가 "갈 테면 가라"고 오히려 후련해한다. 마침 뜻 맞는 도반 네 사람이 점심을 먹다가 행선지를 삼천포 어시장으로 정했다. 출발은 다음 날 이른 아침으로 우리의 계획이 실행으로 옮겨지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예상했던 대로 삼천포 어시장이라고 질 좋은 횟감이 우리를 기다려 주지는 않았다.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어시장을 두 바퀴쯤 돌았지만 아무것도 건진 게 없었다. 우린 다시 해변도로를 따라 통영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어시장 입구의 단골 고무대야 아줌마가 "오늘 물건 없어. 90%가 양식이여" 하는데 김이 팍 새고 말았다. 알고 있는 사실이 진실로 확인될 때 배신감은 더욱 허무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우린 곰장어 2㎏(㎏당 2만2천원)과 뿔소라 몇 마리를 샀다. 여름바다의 선물치곤 너무 시시하다.

그러나 삼천포~통영 구간 해변도로의 풍광은 숲과 바다를 적절히 배치한 캘린더 사진처럼 너무 멋지다. 우린 여름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정자에 앉아 곰장어와 소라를 구워먹으며 한 마디씩 했다. "여름바다가 이렇게 황당하다니."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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