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축회의의 기만성을 보고 나는 오로지 자진해 병역의무를 거부할 용기를 가진 사람들만이 세계를 점진적으로 전쟁의 재난으로부터 건져낼 수 있을 것이란 확신에 도달했다." 1910년대부터 30년대까지 세계적인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가로 활동했던 아인슈타인이 제네바 군축회의를 파탄 낸 강대국들의 꼼수를 접하고 1931년에 한 말이다. 그러나 그는 발흥하는 파시즘 앞에서 자신의 '양심'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깨달았다.
이러한 각성은 알프레트 나온이란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주고받은 서신에서 잘 드러난다. 나온은 아인슈타인의 선언에 감동해 이렇게 편지를 썼다. "오래전부터 저는 선생님의 유명한 모토, '전쟁이 나면 나는 모든 병역을 거부하겠다'를 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위장된 전쟁 즉 무장평화 시에도, 아니 특히 그러할 때에 살인 조직에 저항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양심적 병역기피자로 벨기에로 망명했습니다… 두 청년이 현재 브뤼셀에서 군법회의에 계류되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오셔서 그들을 위해 한마디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답신은 의외였다. "한때 개인적 저항으로 유럽에서 군국주의와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졌지요.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유럽의 한가운데에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전쟁 준비에 힘을 쏟고 있는 강대국(독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특히 벨기에와 프랑스가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됐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현재 제가 벨기에 시민이라면 병역을 거부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유럽 문명의 보호에 기여한다는 생각으로 기꺼이 군 복무를 받아들이겠습니다."('아인슈타인-우주를 향한 어느 물리학자의 고찰' 프랑수아즈 발리바르)
문재인 후보가 대선 공약으로 '대체복무제'를 내놓았다. 이는 헌법상의 병역의무를 흔들게 되는 현실적 문제뿐만 아니라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안고 있다. 전쟁이 없어지지 않는 한 적으로부터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려면 누군가는 반드시 총을 잡아야 한다. 이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과 종교적 신념은 그들 대신 총을 잡은 사람들의 희생을 필요로 함을 뜻한다. 이는 참으로 이기적이다. 문 후보는 대체복무가 안고 있는 이런 윤리적 딜레마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성찰해 봤는지 모르겠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