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학 노트 위에/ 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 모래 위에 그리고 눈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중략)/ 먼동 트는 새벽 입김에/ 바다 위에 모든 배 위에/ 미친 듯 불 뿜는 산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중략)/ 파괴된 나의 피신처 위에/ 무너진 나의 등대들 위에/ 권태를 주는 담 벽돌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욕망이 없는 곧은 마음씨 위에/ 발가벗은 이 고독 위에/ 죽음의 이 행진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그리고 한마디 말의 위력으로/ 내 인생을 다시금 마련한다./ 너를 알기 위해 나는 태어났고/ 너를 이름 짓기 위해 있느니/ 오 '자유'여!(폴 엘뤼아르의 시 '자유')
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중략)/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김지하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
며칠 전 페이스 북에서 친구가 쓴 글을 읽었다. 그 글은 2차 대전 당시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시인인 폴 엘뤼아르의 시 '자유'와 한국에서 오랫동안 저항시인(무엇에 저항했는지는 모르지만)으로 불린 김지하의 대표 시 '타는 목마름으로'를 비교한 것이었다. 그 글의 내용은 한마디로 김지하의 시가 폴 엘뤼아르의 시를 베낀 것인데 이미 오래전에 '자유'라는 시가 한국에 소개되었고 그 시를 읽은 사람들이 김지하가 그 시를 표절한 것을 알면서 침묵한 것은 표절의 명백한 공범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어 친구는 우리가 그동안 김지하라는 이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주저해 왔던 것은 젊은 날 자신이 지켜왔던 것들을 잃지 않으려는 일종의 보상심리와 같다고 썼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두 시를 읽는 순간 김지하의 시가 표절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왜 많은 사람들은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을까? 이유는 지극히 단순하다. 패거리 문화 때문이다.
낯모르는 이국의 시인이 쓴 시가 무슨 대수랴. 우리의 위대한(?) 시인의 명성에 먹칠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는 심리가 결국 김지하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일부 평론가들은 오히려 원저자를 연애시나 쓰는 통속 시인으로 폄훼하는 작태를 서슴지 않았다. 부끄러웠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지식인의 가장 큰 오류는 자신의 잘못을 알면서도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데 있다. 더구나 그 변명은 옳은 것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가질 때, 더욱더 일그러지고 왜곡된다.
친구의 말처럼 김지하는 거짓된 신화에 불과하다. 김지하 자신이 이미 오래전에 그야말로 어쩌다가 민주화 운동에 엮이게 되었고 징역살이란 것도 늘 각서를 쓰고 풀려나오곤 했다고 고백했음에도 많은 이들은 그것조차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닌지 동정하기조차 했다. 그것이 결국 오늘날 그가 노시인의 얼굴로 야당을 지지한 48%의 국민이 빨갱이세력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망언을 퍼붓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결국 그 망언은 김지하가 자신이 표절한 시를 알고도 모른 척한 사람들을 향해 퍼붓고 있는 저주의 독설에 다름 아니다.
인터넷에서 친구의 글을 몇 번이고 곱씹어 읽으며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온 구절,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른 생명의 나무"라는 대목을 떠올렸다. 몇 년 전,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세상을 떠났던 선배는 늘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 초심은 늘 그가 술자리에서 즐겨 부르던 노래 상록수에 있었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치른 들판에 솔잎 되리라.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사람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라고 굳게 믿는다.
전태흥 미래티앤씨 대표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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