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훙장 평전/ 량치차오 지음/ 박희성'문세나 옮김/ 프리스마 펴냄
이 책은 19세기 말 청나라의 실권을 갖고 격동의 세월을 살아온 풍운아 리훙장(李鴻章)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 책을 쓴 이가 량치차오(梁啓超)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량치차오는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중국을 대표하는 사상가이며 정치가였다.
이 책은 리훙장이 1901년에 죽자, 같은 해에 량치차오가 쓴 것이다. 왜 량치차오는 자신의 정적인 리훙장 평전을 썼는가? 저자 량치차오는 이 책에서 "역사를 쓰는 사람은 반드시 공정한 마음을 가지고 써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기꺼이 자신의 정적마저도 끌어안고 공정한 마음으로 군사가, 정치가, 외교가로서 리훙장의 잘잘못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청일전쟁의 패배와 외국 열강들과의 굴욕적인 조약 체결 책임을 모두 리훙장 한 사람에게만 돌린다면 정권을 잡고 나라를 망친 다른 중신들의 죄까지 리훙장에게 덮어씌우는 꼴이 될 것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량치차오는 지은이의 말에서 "중국에는 리훙장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상당히 많다. 나와는 정적이고 사적인 친분 또한 깊지 않기 때문에 그를 변호해주고픈 마음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이 책 속에는 그를 변호하거나 그를 위해 해명하는 말이 많다. 이렇게 쓴 까닭은 역사를 쓰는 사람은 반드시 공정한 마음을 가지고 써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략) 리훙장이 이 책을 알게 된다면 지하에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녀석, 나를 이해하는구나'"라고 썼다. 량치차오가 얼마나 자신의 입장과 주관을 개입시키지 않고 공정하게 리훙장을 평가했는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리훙장은 과연 누구인가? 만주족 일색인 청나라 조정에 들어가 실권을 잡은 한족 관리다. 또 청나라를 패망의 위기로 몰고간 태평천국의 난과 염군의 난을 진압한 군사가, 대학사, 북양대신, 총리아문대신 등을 역임한 정치가였다, 또한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중국을 근대화하려 했으나 실패한 양무운동의 선구자이면서도 기울어가는 청나라의 대표로서 외국 열강들을 상대로 굴욕적인 조약들을 체결한 외교가였다. 리훙장의 삶은 격동의 19세기 근대 중국 역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세기 후반 약 40년간 중국의 실권을 가졌던 정치가 리훙장을 알아야 중국 근대사를 제대로 알 수 있다는 주장은 틀림이 없다.
청일전쟁의 패배와 톈진조약으로 그동안 쌓아놓은 명성을 잃게 된 리훙장을 향해 당시 사람들은 매국노, 한간(漢奸), 부정부패자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청일전쟁 이후인 1896년 독일을 방문한 리훙장에게 빌헬름 2세는 '동양의 비스마르크'라는 수식어를 붙이기까지 했다. 그는 매국노인가, 동양의 비스마르크인가.
저자 량치차오는 이 책에서 리훙장이 살았던 19세기 청나라의 상황과 그 속에서 리훙장이 처한 위치, 외국 열강들이 몰려들고 반란이 끝없이 이어지는 혼란기에 중국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 그리고 군사가, 정치가, 외교가로서 리훙장의 삶을 돌아보고, 리훙장 사후 더 이상 인재가 없는 중국의 현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특히 유럽 순방 중 비스마르크를 만난 리훙장이 만주족 관원 일색인 청조에서 한족 중신으로서 자신이 느끼는 고뇌와 근심, 분노와 우려를 털어놓으며 조언을 구한 일화도 소개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 리훙장이 과연 어떤 인물인지 설명하기 위해 중국 안팎의 역사적 인물 16인과 리훙장을 각각 비교해 설명하고 있는 점도 매우 흥미롭다.
309쪽. 1만8천원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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