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별별세상 별난 인생] 생업하며 서예·멘토…바빠도 하고픈 게 또 있죠

서문시장서 염색점 전진희 씨

쉰네 살의 전진희 씨. 그녀는 욕심(?)이 많다. 하는 일이 많다. 생계인 천연염색업을 비롯해 서예, 결혼이주여성의 멘토 등의 일을 하다 보면 하루 해가 짧다. 조곤조곤 말하는 말투며 50대 아줌마치고는 좋은 인상과 분위기를 지닌 전 씨는 아쉬운 얘기를 하면 무엇이든 들어줄 것만 같다. 그러나 그와 얘기하다 보면 참 욕심 많은 여자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 씨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더 있다고 했다.

◆못이룬 대학생의 꿈 지금 발현된 듯

전 씨는 현재 남편과 서문시장 2지구 1층에서 천연염색 전문점 '목화'를 운영하고 있다. 직접 염색한 옷을 디자인해 만든 생활한복과 이불, 커튼, 카페트, 방석, 가방, 신발, 휴대폰 주머니, 실내화, 가방, 모자 등을 팔고 있다.

"우리 집 생업이죠. 남편 혼자 할 수 없어 돕고 있어요. 아니, 어찌 보면 남편이 저를 돕고 있는지 몰라요."

전 씨는 남편이 고맙다고 했다.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온 것도 남편의 이해와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고 했다.

"모두 남편 덕이죠. 남편을 잘 만난 것 같아요. 제가 적당히 조절한 것도 있지만 남편은 아무리 힘들어도 제가 하는 일을 가로막은 적은 없었어요. 많이 고맙지요."

전 씨는 아무리 바빠도 요란을 떨지 않는다. 힘들다고 내색 또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 씨는 조용조용 하나하나 실천에 옮기고 있다. 그러면서 또 다른 일을 계획하고 있다. 전 씨는 그런 여자다.

"어릴 적 힘들게 살았어요.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이 더 많은지도 모르겠습니다. 바쁘게 힘들게 살면서 한 가지씩 이루며 사는 게 보람되고 재미있어요."

그는 경남 창녕 출신이다. 마산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은행원으로 있다가 결혼해 대구로 왔다.

"대학에 가고 싶었어요. 정말로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진학을 못했어요. 은행원이 됐지만 책 한 아름을 안고 캠퍼스로 향하는 친구들이 부러웠어요. 그때 가슴에 묻었던 꿈과 한이 지금 발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염색하는 여인

전 씨는 주말이면 남편과 함께 성주 용암면에 있는 작업장으로 향한다. 염색을 하기 위해서다. 물론 가계에 도움을 주기 시작한 것이지만 천연염색은 전 씨에게 또 다른 경험이다.

"천연염색은 인간의 감성을 자연의 계절을 닮은 아름다운 시공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이렇게 풀, 열매, 나무, 꽃 등에서 얻어지는 천연 염색의 색상은 우리에게 정겨움과 부드러움을 느끼게 해준다"고 했다. 천연염색은 힘들다. 과정도 어렵다. 그리고 화려한 맛도 없다. 하지만 그 은은한 빛깔과 자태가 마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전 씨는 그래서 더 애착이 간다고 했다.

"염색은 주로 한여름에 하는데, 땀 흘려 염색한 것을 줄에 걸어 둡니다. 그 천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을 보면 보람도 있지만 행복감 같은 느낌이 들어요. 힘들었던 순간이 사라집니다. 또 원하는 색깔이 나올 때 기분은 말로 다할 수 없죠."

전 씨는 쪽을 비롯해 감, 쑥, 칡, 애기똥풀 등 염색 재료를 자연에서 주로 얻는다. 여러 가지 식물들의 잎이나 뿌리, 열매, 줄기를 염색재료로 이용한다. 때로는 직접 재배하는 쪽에서 천연염색을 얻어 반복 염색한 직물을 실과 바늘을 이용해 조각보의 이미지 작업을 한다. 전 씨는 염색을 서예와 접목시키고 싶다고 했다. "내가 한 염색 천에 내가 쓴 글씨와 그림, 그리고 직접 디자인한 옷을 만들고 싶어요."

◆교사의 꿈 대신 서예'한자 공부

전 씨의 어릴 적 장래희망은 교사였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서예였다. "전생에 서예와 관련된 일을 한 것 같아요. 불교 경전은 물론 한자를 한 자 한 자 쓰는 게 재미있고 즐거웠어요. 개인적으로 먹색을 좋아해요. 그래서 염색을 할 때도 먹 색깔을 할 정도로 먹을 좋아합니다. 꽃 색깔보다 먹색이 좋아요."

열심히 한 결과 회원전도 열고, 공모전에 참가해 입상을 하기도 했다. 이것을 밑천 삼아 초'중학생을 상대로 학원을 차렸다. 한자지도사 자격증을 따고 방통대(중어중문과)에도 진학했다. "40대 중반이었지만 평소 공부하고 싶었던 것이기에 힘들었지만 행복했어요. 꿈을 이룬다는 생각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정말 눈알이 터질 정도로 열심히 했어요."

전 씨는 한자를 지도할 때 교사가 된 기분이었다고 했다. "어릴 적 꿈을 조금이나마 보상받은 느낌이랄까요. 어쨌든 기분이 좋았어요."

그는 지금도 시간이 날 때마다 붓을 든다. "사실 일이 바쁘면 바쁠수록 차분하게 사고할 수 있는 시간이나 여유가 없잖아요. 하지만 붓을 들면 달라지죠.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고 또 그 답을 구할 수 있고요."

◆봉사, 그리고 상담사

전 씨는 아이들과 함께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소년원과 교도소를 방문하기로 했다. 그애들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 싶었다. 한때의 실수로 그곳에 있는 그들에게 잔소리나 하고 좋은 말을 한다고 들어줄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노래였다.

"뭐, 말로 교화가 되겠어요. 설득하려다 내가 설득당하겠죠. 노래로 기분 좋게 해주는 거죠. 내 취미도 살리고…."

그는 결혼이주여성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벌써 4년이 됐다. "지적장애인과 결혼한 네팔 색시인데, 참, 착해요. 필요로 할 때 옆에 있어주고 고충을 들어주는 등 친정 엄마처럼 편안하게 해주려 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네팔 색시가 많이 힘들어해 같이 운 적도 많았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남편과 시댁과의 관계가 좋아졌다고 했다.

"다음 달 결혼 후 처음으로 친정에 간다고 하네요."

전 씨는 상담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요즘 자살하는 아이도 많고 폭력 때문에 힘들어 하는 아이도 많잖아요. 그런 아이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청소년은 물론 어른신들도 돕고 싶어요." 전 씨의 욕심은끝이 없다.

사진'박노익 선임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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