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무 독점 100년 넘은 관행…파괴 땐 전국 항만 쓰나미 예고

포항지역 항운노조 경쟁체제 도입되나

포항시 남구 청림동의 포항신항에 상선과 보조선 등이 선적 작업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포항지방해양항만청 제공
포항시 남구 청림동의 포항신항에 상선과 보조선 등이 선적 작업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포항지방해양항만청 제공
기존에 노무 독점권을 갖고 있던 경북항운노동조합(포항시 남구 대도동). 포항
기존에 노무 독점권을 갖고 있던 경북항운노동조합(포항시 남구 대도동). 포항'신동우기자 sdw@msnet.co.kr

경북항운노조가 갖고 있던 독점적인 근로자공급권이 법원에 의해 부정됨에 따라 큰 파장이 예고되고 있다. 복수노조가 허용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경북항운노조가 지배해온 항만하역 업무 전반에 변화의 바람이 불 전망이다. 대구지방고용노동청 포항지청(이하 포항지청)과 경북항운노조는 법원 판결에 불복, 즉각 상고할 방침이지만 법조계에서는 시대적 추세에 미뤄 이 판결을 뒤집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경북항운노조의 독점권이 무너지면 전국 15개 항만의 독점적인 노무공급권이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변화가 예상된다.

◆항만 독점권을 인정하지 않는 법원

대법원의 판결이 남았지만 법원이 1심과 2심에서 기존 항운노조의 독점노무공급권을 부정하면서 포항항이 개혁 대상으로 떠오를 조짐이다. 노동청 포항지청에서도 법원의 판단에 대해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상고하는 것 역시 법원이 경북항운노조의 독점적인 노무공급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복이라기보다는, 오랫동안 관행처럼 굳어온 독점권에 대한 확실한 법리적 해석을 받고, 판결에 따른 양 노조의 반발을 최소화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

유한봉 대구고용노동청 포항지청장은 "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시장경제 아래에서 영원한 독점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새로운 노조를 인정할 경우 양 노조는 생존권을 둘러싸고 갈등과 반목을 한동안 이어가며 국가기간산업의 혼란(항만하역 업무)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양 노조가 건전한 경쟁을 통해 항만'하역 시스템을 개선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하역 관련 업무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항만 노무공급권을 확보하기 위한 복수노조의 근거는 직업안정법 33조에 있다. 근로 공급사업 수행에 적합한 노동조합이면 누구든 노무공급 사업이 가능하도록 규정돼 있으며 기존 항운노조도 이 법에 근거, 노무공급 사업을 하고 있다.

◆판결의 쟁점은?

경북항운노조는 항만물류의 물동량이 감소 추세에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노조가 생길 경우 인력이 과잉공급되고 노동조합 간 물량 확보를 위한 충돌이 예상된다며 포항항운노조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포항항운노조는 물동량이 증가 추세에 있고, 경북항운노조에서 탈퇴한 근로자들이 설립한 노조이기 때문에 항만근로자 총수는 증가하지 않는데다 경쟁체제로 인한 기존의 독점 폐단이 줄어들 것이라며 반박했다.

법원은 국토해양부의 해운항만 물류정보 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포항지역의 물동량은 2002년부터 2011년까지 2005년과 2009년을 제외하고는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봤다. 또 근무인원의 출근일수도 매년 증가 추세에 있고, 급여도 전국 항운노조 가운데 상위권에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를 근거로, 새로운 노조가 탄생해도 기존 인원과 별반 차이가 없고, 물동량 및 급여 등을 감안했을 때 기존 근로자들의 고용관계가 불안정할 이유가 없다며 포항항운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특히 노동조합이 2개 이상일 경우 단체교섭 창구는 단일화되기 때문에 근로자 공급 계약의 체결 과정에서도 충돌이 발생할 우려가 적다며 항만독점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복수노조 성공할까?

전국 항만에서 가장 먼저 복수노조를 만든 곳이 포항이다. 경북항운노조를 탈퇴한 노조원 42명이 세운 포항항운노조는 "기존 노조 집행부가 노무공급권을 독점적 권리로 여기고 있는데, 이를 깨고 민주적으로 노조를 운영하겠다"며 근로자 공급사업 허가가 합당하다는 판결을 법원으로부터 이끌어냈다고 했다. 이번 판결은 전국 항만노조 운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포항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포항의 항만하역 업무가 복수노조로 돌아갈 경우 타 지역에서도 복수노조 설립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도 과도한 시장경쟁에 따른 혼란이 초래된다는 기존 항운노조의 주장을 인정하면서도, 사회적 변화 추이를 봤을 때 독점권 붕괴는 시대적 흐름으로 보고 있다.

2011년 국정감사 당시 홍희덕(전 국회의원) 노동자 살리기 특별위원은 "포항지청은 물동량 감소 때문에 노무공급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지만 물동량은 실질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새로운 노조의 탄생으로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정동영 의원(민주통합당)도 "포항 항운 복수노조의 근로자 공급 사업권은 42명의 생존이 달린 문제다"며 "현장 근로자들이 일감이 늘어나 평소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노무공급권은 벌써 개방돼야 할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100년 이상 이어온 노무독점권이란?

항만 독점노무공급권은 부두 노동자를 항만노조가 독점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항만노조인 성진부두노동조합이 설립된 1898년부터 현재까지 100년 넘게 독점권은 유지돼 왔다. 노조에 가입해야 부두 하역작업을 할 수 있는 클로즈드 숍(Closed shop) 방식은 노조집행부의 '취업 장사' 의혹을 불러와 사회적 문제가 됐다.

2005년 하역업체가 직접 근로자를 고용하는 '항만근로자 상용화'가 도입됐지만 노조의 집단반발을 불러왔다. 결국 전국 15개 항만 가운데 평택항은 전면 상용화를, 부산'인천'울산항 등은 일반잡화부두와 항만하역 등에서만 부분 상용화를, 포항항은 이를 시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용화한 근로자들 역시 항운노조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어 노조가 직원 채용 과정에 여전히 개입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결국 항만 독점노무공급권이 가져온 가장 큰 폐단은 채용을 둘러싼 돈거래 의혹인데, 포항항운노조 역시 이 같은 고질적 병폐를 없애자는 취지에서 복수노조의 필요성을 더욱 강하게 주장해왔다.

포항항운노조 한 관계자는 "법원이 항운노조에 복수노조를 허용하는 판결을 내리고 있는 만큼 이번 기회에 노무독점 구조는 반드시 깨져야 한다. 앞으로 모든 항만하역 노무공급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항'박승혁기자 psh@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