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비는 마우스·키보드 재야 수사대 '검색' 출동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우리 사회에 큰 사건이나 이슈가 생길 때면 어김없이 등장한다. 만화영화에 나오는 '로봇 태권 브이'가 아니다. 네티즌 수사대(NCSI)다. 네티즌(netizen)과 미국 과학수사대의 활약을 다룬 드라마 'CSI'를 합성한 말이다.

박시후 사건 등 연예계는 물론 벤츠 여검사 사건,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회적 이슈가 생길 때면 어김없이 등장한다. 최근에는 청문회 등 정계로까지 진출,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 '아이리스'의 NSS 요원, '7급 공무원'의 국가정보원 직원 등을 떠올리게 한다. 이미 경찰과 검찰에 이어 '제3의 수사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제3의 수사기관

그동안 네티즌 수사대는 실체가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서 그림자처럼 활동해 왔다. 점조직으로 활동하거나 실명이 아닌 '닉네임'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인터넷상에서는 어렵지 않게 이들을 접할 수 있다. 국정원과 경찰청을 모방한 네티즌 조직이 은밀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경찰과 국정원 등을 모방한 엔씨웹 네티즌수사대(NCSI), 네티즌 과학수사대(N.C.S.I), 네티즌 수사대(NSI), 코갤정보원(코정원) 등이 대표적이다. 일부 수사대는 국정원의 로고인 나침반을 응용한 상징물도 만들고 원훈은 물론 행동강령도 마련했다. 일정한 테스트를 거쳐 능력 있는 수사원을 뽑는 등 경찰과 국정원 못지않은 조직력을 자랑하고 있다.

이들의 수사력(검색)과 정보력, 그리고 분석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미 여러 사건에서 검증된 바 있다. 몇 년 전 국민의 공분을 일으켰던 '로우킥녀 사건' 때는 코정원 요원들이 수사에 착수해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CCTV에 찍힌 봉지 크기와 색상, 여자중학교, 태권도장, 2차로 도로, 엘리베이터 등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를 가지고 로드뷰를 한 끝에 해당 여중생의 신상을 밝혀냈다.

북한의 대남 선전 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를 해킹하기도 하는가 하면 '대구 자살 중학생 가해자 보호자 명단 공개'에 나서기도 했다.

국가 차원의 대테러 작전도 불사한다. '넷테러대응연합'은 국가적인 테러 대책에 나서고 있다. 일본이나 중국 등과 외교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정부를 대신해 해당 국가의 사이트를 공격하기도 한다. 누구나 수사를 의뢰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해당 사이트에 사건 의뢰서를 게시하면 적정 여부를 판단해 수사한다.

◆성역 없는 수사

이들에게는 성역이 없다. 대통령, 국회의원은 물론 법조계'언론계 등을 가리지 않는다. 성역 없는 수사에 이어 가혹한 응징도 기다린다. 밝혀진 신상 정보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퍼져 나간다. 물론 퍼 나르는 것은 일반 네티즌들의 몫이다. 공격 대상이 된 인물은 순식간에 사회적으로 매장될 수도 있다. 그래서 '차라리 법적 처벌이 낫다'는 소문까지 돌 정도다.

활동 영역도 다양해지고 있다. 과거 연예인들이나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던 인물에게 국한되었던 활동 영역을 정치나 경제분야로 확장하고 있다. 지난 연말 대선 때는 '물 만난 고기'였다. 선거법상의 제한으로 수사'취재에 한계를 가졌던 언론과 국가기관들을 대신해 맹활약했다. 대선 TV 광고에 등장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집에 있는 의자가 '명품'이란 의혹을 제기했고, 안철수'박근혜 등 유력주자와 관련된 민감한 사안들을 찾아내 이슈로 만들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청문회 등에 고위 공직자들이 내정되자마자 병역기피, 재산증식, 논문표절 등의 의혹을 끄집어 냈다.

또 증권 정보 사이트인 팍스넷 등지에서는 허위 정보 생산자나 배포자에 대한 색출 작업에 나서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정치 테마주 등을 위주로 활동한 주가조작 세력들에 대한 응징에 나서면서 본격화됐다. 주가조작 행위를 한다고 판단하면 과거 댓글이나 추천글 등을 통해 논리를 반박하고 신고를 하는 소극적인 대응에서부터 정도가 심하다고 판단될 때는 과감한 신상 공개에 나선다.

◆전 네티즌의 수사관화

네티즌 수사대의 활약(?)에 자존심이 상한 경찰이 이들에 대한 견제를 시작했다. 자칫 네티즌 수사대의 활동이 개인정보 유출 등 현행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경찰청 공식조직인 사이버수사대가 아니라 인터넷 자정을 유도하고 불법 활동을 감시하는 '누리캅스'가 나서고 있다. 물론, 고소'고발 등이 접수될 경우에는 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나선다.

대구경찰청은 2009년부터 누리캅스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시민 54명이 회원으로 등록해 인터넷 자정운동을 하고 및 불법을 감시하고 있다. 또 매년 한두 차례 음란물 신고대회'불법 유해정보 신고대회 등을 열어 누리캅스의 실력을 키우고 있다. 적발 건수도 매년 수십 건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 경찰 측의 설명이다.

이처럼 네티즌 수사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함께 견제가 커지자 '탐정 네티즌'까지 등장하고 있다. 공개적이고 조직적인 활동 대신, 개인의 관심사와 주관에 따라 움직이는 탐정 네티즌들이 늘고 있는 것. 이들은 특정인의 신상을 턴 다음 카페 등에 가입해 자신이 얻은 정보를 공개한다. 그리고는 포털사이트나 개인 블로그 등에 링크를 시켜놓은 후 퍼지게 하는 방식을 취한다.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자신이 최초로 올린 글과 링크 글은 삭제한다. 말 그대로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전직 네티즌 수사대였던 A씨는 "네티즌 수사대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늘어나면서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탐정들이 늘고 있다. 몇몇 실력자끼리 해킹 기법 등의 정보를 나누며 점조직 형태로 운영된다. 한마디로 '전 네티즌의 수사관화'가 되고 있는 셈이다"고 설명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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