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창의성

입학한 지 채 한 달도 안 되는 의학전문대학원 1학년들에게 지난주 강의를 했다. 내가 주로 수술하고 있는 위장과 십이지장의 해부학 강의였다. 그 자리에서 신입생들에게 다소 엉뚱한 부탁을 했다. "지금의 학설도 의심하고, 교과서도 의심하라. 나중에 의사가 된 후에도 기존의 물려받은 지식과 행위들에 대해 항상 의심하라"고 당부했다. 내가 그렇게 뜬금없이 얘기한 것은 학생들에게 '창조적 능력', 즉 창의성을 가질 것을 주문하고 싶어서였다.

애플의 신화를 창조하고 재작년에 타계한 스티브 잡스는 자기만이 창조적인 기업인처럼 생전에 여러 기업들을 상대로 특허권 소송을 걸었다. 그중 1988년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소송은 빌 게이츠가 당시로선 획기적인 애플 매킨토시의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 쉽게 말해 글자만 있던 화면이 더욱 세련된 모습으로 바뀌고 아이콘을 마우스로 클릭하는 방식의 아이디어를 훔쳐서 윈도우즈를 만들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당시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았지만 잡스만 모른 척했던 사실이 하나 있다. 매킨토시의 그 아이디어도 실은 우리들에게 복사기로 더 많이 알려진 회사인 제록스에서 빼낸 것이었고, 더 놀라운 것은 그것도 제록스의 원천기술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제록스도 한 대학 연구자에게서 그 기술을 훔쳤던 것이다. 물론 잡스는 긴 소송에서 졌다.

그렇다면 도대체 창의성의 실체는 무엇일까? 여기서 우리가 흔히 창의성으로 세상을 바꾸었다고 여기는 천재들의 이야기를 보면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뉴턴이 유율법이라는 미적분 계산법을 만들었을 때, 그는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훔쳤다는 비판을 들었다. 그때 뉴턴은 이렇게 답했다. "더 멀리 바라보기 위해 거인들의 어깨에 올라서야 했습니다."

다윈도 예외는 아니다. 그의 진화론은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적 진화 개념을 빌려온 것이었으며, 적자생존의 개념을 최초로 발표한 논문은 종의 기원이 나오기 1년 전에 러셀 월러스가 발표한 논문이었다. 여기에 대해 인류가 낳은 또 다른 천재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평했다. "창의성의 비밀은 그 원천을 숨기는 방법을 아는 데 있다."

과연 창의성이란 게 결국 남의 생각을 빌리거나 훔치는 것에 불과할까?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성경의 전도서에서도 '하늘 아래 새 것은 없다'고 했다. 그러니 어차피 앞서 간 남의 것을 빌리거나 베끼거나 훔칠 수밖에 없다.

내가 하고 있는 수술조차 남의 방식을 빌린 것이 아닌가.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반드시 자기의 것을 보태야만 이른바 창의적인 것이 된다. 그렇게 자기의 것을 보태려면 남의 어깨에 올라서더라도 보이는 것을 항상 의심해야 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나를 비롯한 선배들의 어깨너머로 더 먼 곳을 바라보며 항상 의심하기를 바란다.

정호영 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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