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들아, 너만의 '세한도'를 남겨라"

추사의 마지막 편지, 나를 닮고 싶은 너에게

추사의 마지막 편지, 나를 닮고 싶은 너에게/설흔 지음/위즈덤하우스 펴냄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유배와 실각이라는 인생의 시련을 헤쳐나간 과정을 담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이 책의 소재다. 여기에 작가적 상상력을 보태 그려낸다. 아들을 향한 부성애, 자아성찰,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 등 여태껏 잘 알지 못했던 추사의 인간적인 면모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추사 김정희는 19세기 조선을 대표하는 예술가이자, 학자다. 그는 또 세도정치를 비판하다 유배를 가는 등 큰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추사체'는 제주도 유배 시절에 완성한 것이며, 평생의 역작으로 손꼽히는 '세한도' 또한 이 시기에 남긴 작품이다. 다산 정약용의 역작들이 유배 기간에 만들어진 것과 일맥상통한다.

심리학도 출신인 저자 설흔은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작가적 상상력을 더해 추사의 유배생활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이 글 속에서 화자인 '나'는 추사이며, '너'는 소심하고 나약한 성격의 서얼인 아들이다. 유배지인 제주에 도착한 추사는 문득 '아버지를 닮고 싶다'는 아들을 떠올린다. 모든 면에서 냉정하고 비판적이었던 추사에게 유약한 아들의 모습은 사회적 차별을 받는 서얼이라는 점을 배제하더라도 위태롭고 걱정스럽기만 하다.

추사는 아들뿐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도 좀처럼 마음을 열거나 호평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냉정한 성격은 곧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전형'을 보여준다. 하지만, 분명 그 냉정함 속에는 따뜻한 마음과 진심 어린 걱정이 포함되어 있다. 저자는 이러한 추사의 또 다른 이면을 들여다보고 그의 가르침 속에서 위기와 절망을 이겨내는 방법, 걱정과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 사람에게 신뢰를 얻는 방법, 목표를 실현하는 방법, 예술과 인생의 정도를 찾는 방법 등 인생에서 꼭 필요한 마음가짐을 알려준다.

이 책은 다섯 장으로 이뤄져 있다. 각 장마다 에피소드를 싣고 있다. 추사와 인연을 맺은 인물들도 나온다. 그들과의 이야기에서 '과연 추사다'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왜 추사가 위대한 예술가이자 학자였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책의 뒷부분에 실은 '주요 인물 소개'와 '추사 김정희 연보' 또한 각 에피소드에 등장한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자료다. 여느 책들의 있으나 마나 한 부록과는 다르다.

추사가 던지는 다섯 가지 가르침은 이렇다. 맨 먼저 "혹독한 관리의 차가운 손을 기억하라"다. 위기와 절망에 처했을 때, 그 상황을 두려워하지 말고 초연한 자세를 유지하라. 꿋꿋하고 냉정하게 현실을 파악하되, 차가움 그 이면에 있는 따뜻함은 잊지 말라는 것이다.

둘째가 "사물의 올바른 위치를 기억하라" 다. 걱정과 불안 때문에 흔들릴 때, 반드시 먼저 해야 할 일의 순서를 기억하라. 눈에 보이는 것에만 현혹되지 말고, 머뭇거림과 의심의 시간을 없애라고 충고한다.

셋째는 "아랫목이 그리우면 문부터 찾아서 열어라"다. 어떤 목표를 실현하고 싶을 때, 현실적으로 너를 도울 수 있는 사람부터 찾아라.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핵심을 파악하고, 꿈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놓치지 말라고 했다.

넷째는 "맹렬과 진심으로 요구하라" 이다. 사람에게 신뢰를 얻고 싶을 때, 너의 진심과 정성을 먼저 표현하라. 나에게 요구하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타인에게 진심을 정확히 전달하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다섯째는 "너의 '세한도'를 남겨라" 다. 예술과 인생의 정도를 알고 싶을 때, 맹렬한 진심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부터 생각하라. 그들을 향한 다짐을 작품으로 남기되,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으라는 것이다.

214쪽. 1만3천원.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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