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일본 역사 색안경 넘어보기…『처음 읽는 일본사』

처음 읽는 일본사/ 전국역사교사모임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한국과 일본만큼 서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갖고 있는 나라도 드물다. 저자는 상대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자기 잣대로만 판단해 버리면 잘못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음을 알기에, 무엇보다 먼저 따뜻한 시선으로 일본의 역사를 바라보고 성찰하고자 한다. 그 결과물이 이 책이다. 이로써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이분법으로 보아 오던 것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저자인 전국역사교사모임은 1988년에 결성된 역사 교사들의 단체이다. 전국에서 2천 명의 교사가 자발적으로 참여, 생생함과 감동이 있는 '살아 있는 역사 수업'을 위해 다양한 연구 활동을 전개하고 이를 학교 현장에서 실천하고자 노력해 왔다. 그 결실이 '살아있는 교과서' 시리즈다. 이 책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결과물이다.

일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천황, 무사다. 천황(天皇)은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 '천황 폐하 만세'(덴노 헤이카 반자이)라고 외치며 죽으러 가는 가미카제 특공대에서 봐온 익숙한 장면이다. 그리고 사무라이로 불리는 무사는 무사도와 일본도라는 이미지를 품고 있어 그리 생소하지 않다. 저자는 여기에 조닌이라고 불리는 상인들을 더해 일본의 역사를 구성한다.

맨 먼저 주인공으로 떠오른 존재는 덴노 즉, 천황이다. 호족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이던 그는 왕권을 강화하는 쇼토쿠 태자의 다이카 개신으로 기세 양양해진다. 그러나 2막에서는 막부시대가 열리면서 천황은 무대 뒤로 사라지고 그 자리를 무사들이 대신한다. 그리고 그 사이 등장한 상인은 가부키와 우키요에(일본 목판화)를 유행시키며 새로운 문화를 꽃피운다.

덴노가 다시 조명을 받는 계기는 메이지 유신이다. 무사와 상인도 덴노를 떠받치는 주역으로 함께 등장하는 것이 일본의 근대다. 잊혔던 덴노는 갑자기 신으로 떠받들어지며 화려하게 부활하고, 무사는 군부로, 상인은 재벌로 거듭난다. 동아시아를 누비며 여기저기 벌집으로 만들다가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일으키더니 원자폭탄이라는 날벼락을 맞으며 막이 내려간다.

일본의 하늘을 찌를 듯하던 기세는 2차대전으로 꺾인다. 미군이 등장해 덴노와 군부, 재벌의 권력을 땅으로 떨어뜨리고 평화헌법을 만든다. 민간에서는 민주주의를 향한 움직임이 꿈틀거리지만, 한편에서는 제국주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세력이 공존하는 가운데 오늘날의 일본으로 이어진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의 책답게 역시 정치적 사건과 연대표 중심의 메말라 있는 역사책이 아니다. 제목처럼 일본사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역사적 사건을 생생하게 재구성하고 인물에 얽힌 일화를 곳곳에 배치해 역사라는 무대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숨 쉬며 살아 있는 책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낯선 공간으로 친절하게 안내하는 지도와, 일본의 문화와 역사를 담은 200여 컷의 도판이라는 무대 장치들은 일본을 더욱 생생하게 만날 수 있게 해준다.

일본사를 전면적으로 다루며 한국인의 눈으로 이웃 일본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읽으려고 애쓴 책이다. 특히 모방에만 능한 나라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넘어 일본 문화의 창조적 능력을 읽으려고 노력한 것이나, 제국주의와 군사 대국화로 국제사회에 끼친 악영향 이면에 있는 일본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을 일깨우는 점이 그렇다.

이 책은 또한 일본 제국주의의 잔여물들을 살펴봄과 동시에 그간 잘 접할 수 없었던 일본 내 다른 목소리들, 평화헌법과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다양한 시민운동의 흐름까지 두루 살펴본다. 이를 통해 동아시아의 공존을 위한 일본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 보며 일본의 어제와 오늘을, 한국과 일본의 화해를 위한 끈을 이을 수 있다.

398쪽. 1만9천원.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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