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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산책] 엄마의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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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茶禮)가 끝나자 형제들은 모두 상머리에 앉았다. 돌아가신 엄마의 첫 제사였다. 제사란 것이 원래 죽은 사람 핑계로 산 사람끼리 만나는 제도라고 하지만 어쨌거나 부모는 죽어서까지도 흩어져 사는 자식들의 연결고리인 것만은 사실인 모양이었다. 핏줄끼리 모여 부모에 대한 아쉬움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동생들에게 술을 한 잔씩 건넨 맏동생이 입을 열었다. "대단한 노인네셨지. 평생 아버지보다 엄마가 더 무서웠다니까!" 동생들이 맞장구쳤다. "당연한 거 아니오? 아버지도 엄마를 못 이겼으니…."

매사에 우유부단하고 답이 없는 아버지에 비해 사리 분명하고, 진취적이었던 엄마에 대한 아들들의 평가였다. 동생들은 하나같이 아버지의 성향을 닮아 욕심 없이 고만고만한 삶을 꾸려가는 위인들이었다.

"저는 할머니가 무섭지 않았는데요." 외삼촌들에게 술을 따르던 아들이 나섰다. 제가 직장을 다니고 있었던 탓에 많은 시간을 할머니와 함께 보낸 아이였다. 객기가 많고 산만해, 속깨나 썩인 녀석이었다. 내 마음이 이 아이의 성적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가던 시절, 녀석만 보면 야단치고 싶어 안달했다. 그럴 때마다 녀석은 할머니 등 뒤로 숨었다. 할머니는 손자에게 타일렀다. 기죽을 것 없다. 사내자식은 하고 싶은 것도 하며 살아야 하는 거야. "괜찮아, 괜찮아."

"그럼요, 할머니는 쉼표였어요." 이번에는 모처럼 연주 스케줄이 비어 귀국한 딸이 나섰다. 어렸을 때부터 악기를 공부한 아이였다. 얼마나 고단한 삶이었던가? 스타카토로 시간을 끊어 도 닦듯이 연습에 빠져 있던 손녀에게 할머니는 늘 말했다. "좀 쉬렴. 쉬어가면서 해."

유학시절 하루 8시간씩 정신없이 연습하다가 문득 배가 고팠다고 한다. 밥솥을 여니 밥은 없고, '좀 쉬라'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그리워서 밥솥을 끌어안고 울었다는 손녀는 아직도 그때의 감회를 못 잊겠는지 눈물을 글썽거렸다.

"어쨌거나 대단한 어른이셨어. 겁나는 게 없었잖아?"

남동생들이 꽤나 취한 모양이었다. 여자들이 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첫 제사라 상 위에 영정사진이 놓여 있었다. 그 사진을 벽에 걸며 엄마와 눈을 맞췄다. 편안하고 따뜻한 시선이었다. 무학(無學)이었던 엄마를 많이 배운 남편과 자식들이 의지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엄마의'쉼표'때문이 아니었을까? '괜찮아, 괜찮아'라고 늘 말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그립다.

小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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