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메디시티 대구, 의료 100년] 나환자들의 시련

일제강점기 소록도에 환자 강제격리, 강제낙태 정관수술 등 인권 침해

1916년 문을 연 소록도 자혜의원 본관. 사진 출처 = 한국 근현대 의료문화사(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1916년 문을 연 소록도 자혜의원 본관. 사진 출처 = 한국 근현대 의료문화사(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우리나라 나환자들에게 먼저 관심을 가진 것은 선교사들이었다. 동산기독병원이나 대영나병자구료회 등에서 요양원을 설치해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조선총독부는 다분히 정치적 목적으로 1916년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 '소록도 자혜의원'을 만들었다.

일본은 1931년 '나병 예방법'을 제정하고, 모든 환자를 강제로 격리시킬 수 있도록 했다. 식민지 조선에서도 일본의 나환자 격리 조치는 그대로 적용됐다.

선교단체가 만든 요양원들은 거리를 떠돌던 나환자들을 따로 모아 치료와 함께 재활교육을 했다. 하지만, 총독부는 나환자들을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것이 공중위생은 물론 치안을 확립하는 방법이라며 소록도로 환자들을 몰아넣었다.

당시 경찰서장은 감염 의심자를 검사하고 출입지역을 제한할 수 있었으며, 도지사는 환자 직업을 제한하고 요양소에 강제로 집어넣을 수 있는 권한을 지녔다. 나환자들에게 인권은 없었다.

소록도에 들어온 환자들은 자유를 박탈당했다. 평생 섬에서 나갈 수 없었다. 소록도 자혜의원 원장의 권한은 막강했다. 마음대로 징계를 내리고 감금시키기도 했다. 일제 말기 태평양전쟁이 벌어지자 일제는 미국을 적성국가로 간주, 선교사들을 강제로 추방하고 병원'학교 등을 빼앗았다. 이런 과정에서 선교단체 요양원에 있던 환자들을 소록도로 보냈다.

1942년 6월 20일 소록도 자혜의원 제4대 원장인 스호 마사토가 한 환자의 칼에 찔려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9년 전 부임한 스호 원장은 몸도 가누기 힘든 환자들을 강제 노역에 동원시켰다. 굶주림과 학대에 지쳐 탈출을 시도하는 환자들이 속출했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환자 돈을 갹출해 동상을 세운 뒤 절을 하고 '원장 찬가'를 부르도록 했다.

사건이 벌어진 날에도 환자들이 늘어선 가운데 원장을 태운 차가 도착했고, 훈시를 늘어놓기 위해 자기 동상 앞으로 다가가는 순간 한 환자가 뛰어나와 칼로 찔렀던 것이다. 자수한 이춘상은 환자의 원한을 풀기 위해서 의거를 결행했으며, 이번 사건을 통해 소록도의 참상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사형을 선고받은 이춘상은 복역 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일본은 1915년부터 이른바 '우생(優生) 수술'을 내세우며 임의로 나환자 산모를 강제로 낙태시키고, 남성 생식 기능을 없애는 정관 수술을 하는 등 인권 침해가 극에 달했다. 소록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직원에게 반항했다는 이유로 소록도 교도소에 들어가면 석방의 대가로 수술을 받아야 했고, 그저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아무나 붙잡아 수술을 하기도 했다.

김수용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