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뷰通] 대구경북 한방의료관광 세계화 앞장 손인석 영천손한방병원 이사장

의료인 꿈 이루려 마흔에 간호학과 입학, 다시 시작하는 도전은 "한방

손인석은?= 1964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다. 영천초교와 경북중,대륜고를 졸업했다. 미국에서 대학(오하이오주 핀들리 대학)과 대학원(코네티컷주 브릿지 포트 대학 MBA)을 졸업했다.귀국후
손인석은?= 1964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다. 영천초교와 경북중,대륜고를 졸업했다. 미국에서 대학(오하이오주 핀들리 대학)과 대학원(코네티컷주 브릿지 포트 대학 MBA)을 졸업했다.귀국후 '영천손한방병원'에서 의무원장 등을 거쳐 2010년부터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영천신문사 사장, 피플 투 피플 국제 이사, 영천 JC회장 등을 역임했다. 경산대 총동창회 회장, 대한 남자 간호사협회 상임 부회장, 대한의료관광협의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지난달 국회의원 귀빈식당에서 주한 외국인 대사와 부인 20여명을 초청해 한의학의 우수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달 국회의원 귀빈식당에서 주한 외국인 대사와 부인 20여명을 초청해 한의학의 우수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세계 육상 경기 당시 동대구역에 한방진료, 침, 뜸에 대한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세계 육상 경기 당시 동대구역에 한방진료, 침, 뜸에 대한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동의보감'이 발간된 지 올해로 꼭 400년이다. 백성들의 질병 치료와 예방을 위해 조선 선조가 허준 등에게 편찬을 명한 의학서적으로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약재들을 이용해 질병 치료에 이용하게끔 한 동양 의학 백과사전. 지난 2009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기록 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정도로 자랑스런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400년이 흐른 지금. 한의학의 신세는 처량하다. 양방의 위세에 눌리고 대체의학이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 폐업으로 문이 굳게 닫힌 한의원이 늘고 있고 덩달아 한약재 판매상들도 위기를 맞고 있다. 손인석(50) 영천손한방병원장은 한의학의 세계화와 의료관광에 앞장서며 추락하는 한의학계에 날개를 달고 있다.

◆대구경북 한방 의료 관광'세계화에 앞장

손 원장을 만난 곳은 그가 운영하고 있는 영천의 한방병원이 아니었다. 대구 시내의 한 식당이었다. 사전에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손원장은 마침 대구에서 대구경북 의료관광을 위한 모임이 있다며 대구에서 보자고 했다. 가업으로 물려받은 손한방병원을 운영한지 3년에 불과하지만 손원장은 대한의료관광 협의회 사무총장 등을 맡으며 대구경북 의료관광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그가 한방의료 관광과 세계화에 본격적으로 앞장선 것은 지난 2011년 대구에서 열린 세계 육상선수권 대회부터다. 손원장은 미국 유학경험을 살려 통역관으로 봉사활동에 나섰다 한의학의 국제화 가능성을 엿봤다고 했다. 당시 그는 동화사 성문 스님과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라민 디악 회장 등의 통역을 맡기도 했다.

"육상 경기의 특성상 순간적인 힘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아 부상당하는 선수들이 많았지요. 이 중 외국선수들이 한방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특히 근육이 뭉치는 경우 양방보다는 침을 맞으면 더 빨리 낫습니다. 부상 부위에 직접 치료를 해서 빨리 낫기 때문에 많은 외국 선수들 한방을 이용했습니다. 한마디로 한의학의 국제적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계기였지요" 이후 손원장은 본격적인 한의학 전도사로 나섰다. 대구에서 국제적인 행사나 모임이 있으면 어김없이 통역관을 자청했다. 물론 한의학 홍보도 겸해서다. 캄보디아 부총리가 대구에 왔을 때도 그랬고 세네갈 장관이 왔을 때도 통역을 자처했다. 지난달에는 국회에서 11개국의 대사부인들을 상대로 '한의학 바로 알기'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인도,루마니아,헝가리 대사관에서 '한의학을 소개해달라'며 직접 초청도 받았다.

이 같은 열성때문에 올 2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국내 행사 및 봉사 활동에 적극 참여해 한국 의료관광의 위상을 높인 점을 인정받아서다. "한의학에 대한 관심이 전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서양의학에 비해 직접적으로 1차적인 부분에서는 담당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지요. 즉각적으로 치료할 수 있고 장소의 제약도 크게 받지 않고 비용대비 효과도 뛰어납니다."

◆'실패한 꿈' 더 많은 꿈을 꾸다.

한의학의 세계'관광화에 앞장서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한의사가 아니다. 어릴 때 꿈은 아버지(손재림)처럼 한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공부를 못해서란다.

"어릴 때부터 참 별난 아이였어요. 동네 아궁이는 제가 다 불을 지펴 줄 정도였습니다. 참다못한 아버지가 13살때 대구의 중학교에 입학 시켰다. 대구생활도 마찬가지였다. "가출도 하고 시험을 칠 때면 백지를 낸 적도 있었어요. 요즘말로 하면 문제아였다고 할 수 있지요." 고교 졸업과 동시에 대학(영남대)에 진학했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다행히 미국에서는 '물만난 고기'였다. 자유로운 분위기가 그의 기를 살려준 것이다.

"억누르는 것이 없었어요. 자율적인 학교 분위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은 맘껏 할 수 있었지요. 교내에서 대권도 시범을 보이기도 했고 부학생회장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무사히, 대학(오하이오주 핀들리 대학)과 대학원(코네티컷주 브릿지 포트 대학 MBA)을 졸업할 수 있었다.

7년간의 외국 생활은 그를 많이 바꿔놨다. 귀국후 군입대와 함께 지금의 부인과 결혼했다. "아버지가 원하는 한의사나 의대 진학을 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결혼은 아버지의 뜻에 따르기로 결심했지요.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것 같습니다" 군제대후 영천신문사 사장, 국제평화조직 '피플투피플'이사, 영천 JC회장, 경산대학 총동창회장 등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학창시절 '문제아'가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것. 2010년에는 영천손한방병원 이사장이 됐다.

"많은 사람들이 거위의 꿈을 이야기 하면 꿈을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꼭 꿈이 이뤄져야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꿈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더 많은 꿈을 이룰 수 있었지요"

◆의료인이 되다.

사회적 성공을 거뒀지만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었다. "어릴 적 꿈이었던 한의사가 되지 못해 항상 마음에 걸렸습니다. 더구나 한의사인 아버지, 의사인 여동생과 남동생, 한의사인 부인과 제수씨 틈에서 비의료인으로 산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요" 그러나 무엇보다 제 3세계 등에 가서 의료 봉사를 하고 싶었다. "사회적으로 어느정도 성공하고 나서는 직접 의료봉사를 하고 싶었지요.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사람을 돌보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렇지만 자격이 되지 않았지요"

며칠을 고민끝에 의료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곧장 경산대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그의 나이 마흔살이었다.

실습 위주의 수업 때문에 정말 힘든 3년이었다. "3년 동안 실습 시간을 3번만 빼먹어도 졸업을 시키지 않을 정도로 교수들이 혹독하게 학생들을 가르쳤다"며 지금도 혀를 내둘렸다.

그러나 무엇보다 힘들게 한 것은 그를 둘러 싼 루머. 당시 부산에서 통근을 하면서 공부했던 터라 수업시간을 맞추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결국 수업이 있는 날이면 전날 대구에 올라와 찜질방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소문은 빨랐다. "손인석이 부산에 가더니 마누라랑 이혼하고 찜찔방에서 산다더라", "학교 다닐 때 버릇을 못버리고 가산까지 탕진해 알거지가 됐다더라" 등 근거없는 소문들이 나돌았다. 우울증까지 찾아왔다. 이 같은 소문은 이듬해 고교 동창회에 와이프랑 동행하고 나서야 사라졌다. 어렵게 얻은 간호사 자격증은 그에게 많은 것을 되돌려 주었다. "의료인으로서 당당히 가족들 앞에 설수 있다는 것이 좋았어요. 그러나 무엇보다 '열심히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계기였어요."

◆한방엑스포 유치

올해 쉰살이 된 그가 꾸는 또 다른 꿈은 한의학 되살리기.

"한의학은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건강을 지켜왔습니다. 한방 진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 역시 여전히 높은 편이지요. 그러나 국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문턱이 높다는 말을 들어온 것도 사실입니다. 결국, 한의원을 찾는 환자들이 줄면서 한의학계가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요"

이를 위해서는 국민에게 다가가는 한의학, 생활속의 한의학을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의학의 진단과 치료 방법은 역사적으로 과학성이 입증됐는데도 아직도 한의학은 과학적이지 않고 한약재의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새정부 들어 한방에 대한 정부 인식이 바뀌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한방 주치의를 미국순방길에 데려갔습니다. 희망이 보이고 있는 거지요"

지역 한의학계를 살리는 데도 앞장 설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15년에 열리는 세계의약한방엑스포를 꼭 영천에 유치하겠단다. "올해 세계의약한방엑스포가 경남 산청에서 열리는 데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영천은 옛날부터 국내 최대의 한약재 집산지인데다 우수한 인력, 그리고 메디시티를 표방하는 대구, 국내 최대의 관광 자원을 갖고 있는 경주의 간접 지원을 받을 수 있어 세계의약 한방 엑스포를 열 수 있는 적지 입니다"

앞으로 시대적 요구에 맞게 한의학을 현대화,세계화하는 일에 앞장서겠다는 손원장. 한의학이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 의학의 중심이 되는 날까지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손인석은?= 1964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다. 영천초교와 경북중,대륜고를 졸업했다. 미국에서 대학(오하이오주 핀들리 대학)과 대학원(코네티컷주 브릿지 포트 대학 MBA)을 졸업했다.귀국후 '영천손한방병원'에서 의무원장 등을 거쳐 2010년부터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영천신문사 사장, 피플 투 피플 국제 이사, 영천 JC회장 등을 역임했다. 경산대 총동창회 회장, 대한 남자 간호사협회 상임 부회장, 대한의료관광협의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