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상학의 시와 함께] 내가 행복을 느끼는 때-이오덕(1927~2003)

내가 행복을 느끼는 때는

오후에 햇빛이 창문으로 들어왔을 때다

햇빛은 내가 앉아 있는 책상 위에 찾아와

아이들이 적어놓은 글자 한 자 한 자를

환히 비쳐 보인다.

그러면 그 글자들은 모두 살아나

귀여운 병아리가 되고

팔딱팔딱 뛰어다니는 아기 염소가 되고

여울을 헤엄치는 피라미가 되고

별 같이 반짝이는 눈망울이 된다.

오후에 해님이 비스듬히 기울어져

내가 보는 책장이 더욱 환하게 되면

아, 나는 이 세상에서

행복한 시간을 살고 있구나 싶어

눈물이 난다.

-유고시집 『이 지구에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얼마나 아름다운 지구가 될까』(고인돌, 2011)

교육자, 교육운동가, 아동문학평론가, 시인, 동화작가, 한글연구가, 수필가 등 전방위에 걸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이오덕 선생. 오는 8월 25일이 귀천 10주기다. 지난 8월 5일, 그의 고향인 청송에서 군민들이 그를 기리는 자리를 마련했다. 강산이 한 번 바뀌고 나서야 고향에서도 그를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오덕 선생의 전방위 활동에는 늘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시처럼 지극히 정성어린 마음으로 아이들을 사랑했다. 그 간절함이야말로 이 모든 활동을 가능한 쪽으로, 뜻 깊은 쪽으로 이끈 힘의 원천이었을 것이다.

사랑과 정성의 결과물은 언젠가는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정성을 받게 되어 있다. 협잡과 사기, 음모와 배반, 몰상식과 불관용이 판치는 것 같은 세상이지만 그나마 유지되는 것은 이런 마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오덕의 한글과 아이들을 사랑한 마음은 그의 저술들과 더불어 두고두고 세인들로부터 사랑과 정성을 받을 것이다.

시인 artan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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