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완화의학

노인들은 "여기저기 쑤시고 안 아픈 곳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그런데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은 나이 들면 자연스레 생기는 통증쯤으로 그냥 흘려듣는다. 지인이 허리가 불편해 진찰을 받았는데 의사가 "60년쯤 됐으면 써먹을만큼 써먹었으니 너무 엄살 아니냐"고 농담조로 말했다는 일화도 그런 경우다. 웃고 넘길 일인지 모르겠으나 통증은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고 할 정도로 당사자에게는 심각한 문제다.

국제통증연구협회는 '통증은 조직 손상에 연관된 불쾌한 감각과 감정적인 경험으로서 주관적이고 환자가 상처라고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정의했다. 선뜻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지만 통증은 신체적 손상에 따른 결과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말기 환자의 통증은 단순히 조직 손상에 의한 반응으로 설명하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호스피스 운동의 창시자 시슬리 손더스는 이를 '통합 통증'(Total Pain)의 개념으로 설명했는데 단순히 신체적 통증 이외에도 정신적, 사회적, 영적, 문화적 요인들이 환자 통증에 관여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통증은 치료적 관점에서 깊이 다뤄지지 않았다. 특히 말기암 등 중증 환자가 겪는 통증은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큰 고통임에도 깊이 있는 접근 노력이 부족했고 사회적 인식도 낮았다. 그나마 유럽 선진국들은 '완화의학'이라는 개념을 정립해 통증 치료에 적극 나서고 있다. 말기암환자 등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한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증상을 완화시켜주는 의학 전문 분야로 국내에 완화의학 개념이 자리 잡은 것은 불과 20여년 남짓이다. 처음 완화의학이 소개될 당시 의사들조차 안락사와 혼동했다고 한다.

최근 경기도 포천의 한 뇌종양 말기환자가 고통을 못 이겨 그만 끝내달라는 말을 하자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20대 아들이 아버지를 목 졸라 죽이는 일이 벌어졌다. 경찰은 아들을 붙잡아 범행을 캐고 있지만 사법적'윤리적 판단을 떠나 말기암환자의 고통과 소위 '적극적 안락사' 논쟁까지 촉발하는 일대의 사건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일이다.

국립암센터 통계에 따르면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암환자 30~50%, 진행성'말기암환자 80~90%가 통증으로 고통 받고 있다. 이에 말기 환자에 대한 적극적인 통증 치료와 제도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통증에 대한 인식 제고와 합리적인 치료법에 대한 합의가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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