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453년 10월 10일(음력) 계유정난(癸酉靖難)이 일어난 지 꼭 560년이 지났다. 특히 최근 계유정난을 소재로 한 영화 '관상'(觀相)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1453년의 '그날'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계유정난'은 1453년이 계유년이고, 정난(靖難)은 '어려운 상황을 잘 다스렸다'는 뜻으로 승리자의 관점에서 기록된 용어이다.
1450년 세종의 사망 후 왕위는 장남인 문종에게 계승되었다. 8세에 세자에 책봉된 후 29년간 긴 세자의 자리를 지켰던 문종. 그러나 왕으로 재임한 기간은 너무 짧았다. 불과 2년 3개월 만에 승하하고 왕위는 12세의 세자 단종에게 계승되었다. 20세 이전에 왕이 즉위하면 대비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후견인 역할을 하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단종에겐 어머니가 없었다. 문종은 김종서, 황보인 등 고명대신(顧命大臣:왕의 유지를 받드는 대신)들에게 세자의 보필을 부탁했고, 단종 즉위 후 대신들의 권력이 크게 강화되었다. 왕권 약화의 상황에 가장 분노한 인물은 세종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이었다. 수양은 특히 김종서 등이 권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동생인 안평대군과 손을 맞잡는 것을 경계하였다.
한명회, 권람, 신숙주 등의 책사들과 양정, 홍달손, 유수 등 무사들을 심복으로 끌어들인 수양대군은 거사 1년 전인 1452년 한명회를 활용하여 김종서와 황보인의 집에 염탐꾼을 들여 미리 정보를 입수하는 등 체계적으로 거사를 준비해 나갔다.
책사 한명회가 사전에 포섭한 무인들은 거사의 든든한 후원군이었다. 제거 대상 1호는 신권의 대표주자인 김종서였다. 거사 직전 수양대군은 심복들에게, "지금 간신 김종서 등이 권세를 희롱하고 정사를 오로지하여 군사와 백성을 돌보지 않아서 원망이 하늘에 닿았으며, 비밀히 이용(李瑢:안평대군)에게 붙어서 장차 불궤(不軌)한 짓을 도모하려 한다. … 내가 이것들을 베어 없애서 종사를 편안히 하고자 한다."라고 말할 정도로 김종서에 대한 적개심은 컸다.
1453년 10월 10일 수양대군이 김종서의 집을 방문하였다. 자신의 심복 군사 일부만을 대동하였기 때문에, 김종서는 크게 경계하지 않았다. 수양은 김종서에게 청을 드릴 것이 있다며 편지를 건넸고, 김종서가 편지를 보려고 고개를 숙이는 순간 임어을운이 재빨리 철퇴를 휘둘렀다.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은 김종서가 쓰러지자 승규가 아버지의 몸을 덮쳤다. 그러나 다시 날아온 수양의 심복 양정의 칼을 맞고 두 사람은 쓰러졌다. 이때 겨우 목숨을 건진 김종서는 상처를 입은 후 여복(女服)을 입고 아들 승벽의 처가에 피신했다가 결국은 끌려나와 처형되었다.
수양은 단종을 압박한 후 왕명으로 황보인을 비롯한 조정의 대신들을 불러들이게 했다. 그리고 살생부(殺生簿)에 따라, 반대 세력 제거에 나섰다. 황보인, 조극관, 이양 등 살부(殺簿)에 포함된 인사들은 대부분 처형되었고, 재산은 모두 몰수되었다. 그 가족들 중 일부는 정난공신(靖難功臣) 집안의 노비가 되는 치욕을 당했다.
계유정난이 있던 날 단종은 수양에게 모든 군국(軍國)의 일을 맡게 했다. 영의정과 이조, 병조의 책임을 모두 맡아 정권과 병권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수양은 자신을 포함하여 거사에 가담한 정인지, 한명회, 권람 등 12명을 일등공신에 포함한 것을 비롯하여 43명을 정난공신에 책봉했다. 공신에는 무인들이 19명, 환관 2명, 천민도 1명 포함되었다. 그만큼 신분이 낮은 세력들까지 조직적으로 거사에 동원했음을 알 수 있다. 1455년 윤 6월 수양은 조카 단종을 압박하여 상왕으로 밀어내고 왕위에 오르게 된다.
세조는 왕위에 오른 후에는 집권의 명분과 도덕성의 취약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민본정치, 부국강병책, 왕권의 재확립과 학술, 문화정비 사업에 진력을 하게 되고, 세조대에 확립된 이러한 기반은 조선전기 정치, 문화를 완성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집권 이후 왕으로서 보여준 세조의 능력은 일면 성공한 쿠데타의 모델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쿠데타로 집권한 왕이라는 그림자는 세조에 대한 저평가의 원인이 되고 있다. '권력은 짧고 역사의 평가는 준엄하다'는 말을 떠올려 본다.
신병주/건국대교수·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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