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던 사람 오지 않았다, 밤 열차
빈 가슴에 흙바람을 불어넣고
종착역 목포를 향해 말을 달렸다
서산(西山) 삭정개비 끝에서
그믐달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주먹의 불빛조차 잠이 들었다
주머니 속에서
때 묻은 동전이 울고 있었고
발끝에 돌팍이 울고 있었다
온다는 사람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오지 않았고
내 마음의 산비탈에 핀
머루는 퉁퉁 젖이 불고 있었다
-시집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문학과지성사, 1990)
이 시집 면지에 "1990년 11월 4일"이라고 기록해 놓았다. 서점 이름이 부기된 걸로 봐선 책을 산 날이겠다.
그 시절 나는 일리야 레핀의 그림에 꽂혀 있었다. 그 중에서도 에 오래 머물렀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제목이 주는 어떤 강렬한 끌림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외로웠고 이 말은 뼈아팠다.
그 무렵, 이재무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 나왔다. 이 제목을 보는 순간 어떤 전율을 느꼈다. 흔히 쓰는 구어인데 하필 내가 무겁게 느낀 것일까. 그때 내게서는 한 시대와 더불어 한 사람이 떠나갔고 이 말은 마음을 후벼 팠다.
지금도 이재무 시인을 떠올리면 이 문장이 지나간다. 흔한 구어체 문장 한 줄의 힘이 이리 크다. 물론 시인의 서사와 독자인 내 서사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감동이 증폭되었을 것이다.
좋아하는 시인들을 생각하면 한 문장씩 떠오른다. 이재무 시인의 한 문장은 "온다던 사람 오지 않았다"이며,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는 부록처럼 따라붙는다. 두 문장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물론 내 생각이다.
시인 artan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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