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뷰 通]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이동우 사무총장

터키 엑스포 행사 현지 반응 기대 이상 성황

이동우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사무총장은 '한류'의 최상위 단계인 우리 고유문화의 전파만큼은 경주가 서울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이동우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사무총장은 '한류'의 최상위 단계인 우리 고유문화의 전파만큼은 경주가 서울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의 주요 행사로 마련된 '터키-한국 영화 주간' 행사에 참석한 배우 한가인 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동우 사무총장.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의 주요 행사로 마련된 '터키-한국 영화 주간' 행사에 참석한 배우 한가인 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동우 사무총장.
1954년 경주에서 태어났다. 경주 황남초교, 경주중, 경주고를 거쳐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한국경제신문에서 20여 년간 취재 현장을 누비다가 2008년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청와대 홍보비서관'메시지기획비서관'정책기획관'기획관리실장을 역임했다. 그는 청와대 근무에 대해
1954년 경주에서 태어났다. 경주 황남초교, 경주중, 경주고를 거쳐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한국경제신문에서 20여 년간 취재 현장을 누비다가 2008년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청와대 홍보비서관'메시지기획비서관'정책기획관'기획관리실장을 역임했다. 그는 청와대 근무에 대해 "경북 동해안 원자력 클러스터, 공기업 혁신도시 이전이 늦어질까 봐 적극 추진했지만 기대만큼 속도가 나지 않아 아쉽다"며 "일본 후쿠시마 지진 이후 원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세계 주요 국가 가운데 원전을 포기한 나라는 없다"고 강조했다. 가족으로는 부인 김경희(54) 씨와 1녀 1남을 두고 있다.

올해 하반기 대구경북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이벤트 가운데 하나는 터키에서 치러진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였다. 행사(8월 31일~9월 22일)는 알려진 대로 기대 이상의 성황을 이뤘다. 누적 관람객은 487만7천여 명을 기록했고, '아시아와 유럽의 교차로' 이스탄불은 한 달 가까이 '코레 열풍'으로 물들었다. 7년 만의 해외 나들이에 나선 경주엑스포를 성공적으로 이끈 이동우(59)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사무총장을 2013년 마지막 인터뷰 대상으로 정한 이유다.

◆엑스포, 인류 평화에 기여 평가받아

자리에 앉은 뒤 부드러운 분위기를 위해 농담부터 던졌다. 부러움 반 시샘 반으로 터키 여행만큼은 원 없이 했겠다고 물었다. 터키는 최근 케이블TV의 '꽃보다 누나'가 인기를 얻으면서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되돌아온 그의 대답은 기대보다 재미없었다. '정석'(定石)대로였다.

"엑스포 기간을 포함해 두 달 이상을 터키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이스탄불 시내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폐막식이 끝날 때까지 늘 조마조마해서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거든요. 제가 행사에만 매달려 있다 보니 저희 직원들도 어쩔 수 없이 일만 하더군요. 이 자리를 빌려 직원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큰 행사를 무사히 마친 뒤라 요즘은 그렇게 바쁘지 않겠다는 질문에도 그는 정색을 했다. '워크홀릭'(일벌레)으로 정평이 난 그다웠다. "전국에서 경주엑스포 공연 프로그램 초청 행사가 잇따라 부산, 청주 등 여러 지방도시를 다니고 있습니다. 내년 예산 확보를 위해 서울도 수시로 다녀오고요. 솔직히 쉴 틈이 별로 없습니다."

경상북도'경주시'이스탄불시가 공동 주최한 '이스탄불-경주 세계문화엑스포'는 혈맹인 한국과 터키가 6'25전쟁 이후 가진 가장 큰 만남의 장이었다. 양국 교류협력의 새로운 이정표가 됐음은 물론 인류 평화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양국 문화관광부와 유네스코, UNWTO(국제연합 세계관광기구) 등 18개 기관이 후원하고 세계 40개국이 참가한 지구촌 문화축제였기 때문이다.

터키 현지의 반응도 언론에 소개된 것보다 훨씬 폭발적이었다고 그는 귀띔했다. "처음에는 가장 많은 인파가 붐비는 곳에 설치한 행사장 때문에 시민들이 교통 불편 등을 항의할까 봐 걱정이 컸습니다. 그런데 폐막 후에는 오히려 해체하지 말고 남겨달라고 부탁하더군요. 결국 행사장 있던 곳에 내년에 작은 공원과 정자, 기념비를 대신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이 같은 호응은 조직위가 엑스포를 관람한 492명(터키인 309, 영어권 183)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난다. 터키인들은 엑스포 관람 전에 비해 한국이나 경주 방문을 희망하는 비율이 18.2%포인트 증가했다. 영어권 관광객들은 그 비율이 31.6%p나 늘었다. 공연팀의 수준이 높았던 데다 우수한 운영 수준까지 보여줘 한국과 경주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가 높아진 까닭으로 풀이된다.

"크게 세 가지 정도를 성공 요인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경주에서 시작하는 실크로드의 종착점인 터키에서 한국 전통문화를 알리겠다는 경북도의 탁월한 상상력, 지난 정부의 강력한 초기 지원에다 박근혜정부의 문화융성 국정기조까지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시너지 효과를 거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해외로 수출하고 있는 새마을정신 역시 경북도에서 시작됐지만 한국 고유문화를 이야기할 때 경북을 빼놓을 수는 없지요. 그런 의미 있는 역사를 만드는 데 함께할 수 있었던 건 엄청난 행운이었습니다."

◆'꺼지지 않는 엔진' 솔선수범으로 정평

이 사무총장은 지난 정부에서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지냈다. 2008년 7월 홍보비서관으로 시작해 메시지기획비서관, 정책기획관을 거쳐 이명박정부 임기 마지막까지 기획관리실장을 지냈다. 청와대 핵심 요직에서 국정 전반을 4년 반 넘게 다룬 셈이다.

당시 이 사무총장은 이 전 대통령으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았다. 업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모범을 보였기 때문이다. 별명이 '청와대의 꺼지지 않는 엔진'이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직원들 사이에서는 원성(?)이 자자했다는 후문이다. 그와 함께 근무했던 비서관 출신 한 인사는 "직원들을 엄청 독려하는 스타일이라 불만들이 적지않았지만 자신이 솔선수범하니까 미움을 사지 않았다"며 "거의 모든 국가 현안에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귀띔했다.

이 사무총장은 이 같은 세평(世評)에 대해 언론사 근무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1986년 '한국경제신문'에 입사해 사회부장, 산업부장, 기획부장, 편집부국장, 기획조정실 전략기획국장 등을 역임했다.

"경제지 기자의 역할은 종합일간지 기자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판과 견제가 후자의 주된 기능이라면 전자는 한발 앞선 아이디어와 해법 제시가 우선이지요. 그런 훈련을 20년 넘게 받은 게 국정을 이끌어 나가는 청와대 업무에 적합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자 시절의 버릇을 버리지 못해 꾸지람도 종종 들었습니다. 밥을 후다닥 먹고는 말씀 받아적기에 바쁜 제 모습을 보고 이명박 전 대통령께서는 '식사예절도 모르는 촌놈'이라고 놀리곤 하셨지요."

그의 이 같은 경력과 장점은 7년 만의 대규모 해외 행사를 앞두고 있던 경주엑스포 사무총장 자리에 안성맞춤이었다. 엑스포 측은 지난 3월 보도자료를 통해 '기획조정관리 능력, 폭넓은 식견, 국제적 감각, 중앙부처와의 활발한 교류가 가능한 적임자'라고 임명 배경을 밝혔다.

이 사무총장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하나 던졌다. 청와대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다가 지방 소도시에서 일하는 게 흡족한가라는 우문(愚問)이었다. 그는 "잘못된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것 같다"는 말로 반격(?)했다.

"처음에는 저희 직원들도 그런 오해를 많이 하더군요. 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저를 많이 이해해줍디다. 일이란 것은 하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어떤 자리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보람을 찾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 여러 대학에서 교수직을 제안받기도 했지만 고향 발전에 중요한 일이니 공모에 지원해보라는 선배님들의 제안에 기꺼이 도전하게 됐습니다. 물론 세계문화엑스포의 성공으로 과분한 칭찬도 많이 받았고요."

◆순혈주의, 지역 발전 도움 안 돼

이 사무총장은 경주 토박이다. 2010년 세계유산 목록에 오른 양동마을 출신이다. 양동마을은 유네스코가 세계유산협약 40주년을 맞아 전 세계 160개국 981점의 세계유산 가운데 26개의 대표적 사례를 뽑아 만든 책자에 포함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최근 다시 주목받았다.

"올해 작고하신 부친이 은행원이셔서 외지 근무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까지 양동마을에 계시던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유년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마을이 세계유산에 선정된 것은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솔직히 어깨도 무겁습니다. 제가 4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니 종친들이 무척 반겨주셨는데 비어 있던 한옥집을 잘 보존하라는 뜻이더군요. 하하하."

이 사무총장은 1996년 영국 버밍엄대학에서 지역발전학을 전공, 석사 학위를 받았다. 산업혁명의 중심지였다가 1970년대 이후 급격히 진행된 산업구조의 재편으로 쇠락했지만 1990년대 도시재생사업이 성공, 다시 주목받는 곳이다. 천년 고도의 후손으로서 묘한 책임감이 그를 버밍엄으로 이끌었다.

"유학 시절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지역사회에서 대학의 역할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지역에 뿌리를 두고, 지역 연구에 천착하는 지혜의 산실이었거든요. 지역에 몰입하다 보니 지역 전문가의 풀이 확대되는 건 당연하고요. 전 세계에 불고 있는 '한류'(韓流)의 최상위 단계인 우리 고유문화의 전파만큼은 경주가 서울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이치입니다. 저희가 계속 노력하면 경주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을 다시 한 번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는 출향인사로서 느끼는 아쉬움도 털어놓았다. 지역사회의 폐쇄성에 대한 질타였다. "경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인 석가탑을 만든 사람은 백제에서 뽑혀온 장인 아사달이었습니다. 또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처용은 신라에 내왕하던 아라비아 상인이었을 것이라는 학설도 있습니다. 물론 지역민의 높은 자긍심에서 비롯됐지만 순혈주의는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인적 자원을 과감히 개방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전문분야의 경우 외국인에게도 문호를 열어주면 지역에 신선한 자극이 될 겁니다. 이런 점만 극복하면 대구경북은 타 지역에 비해 정신문화에서 장점이 많아 문화융성의 시대에 더욱 발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이동우 사무총장은

1954년 경주에서 태어났다. 경주 황남초교, 경주중, 경주고를 거쳐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한국경제신문에서 20여 년간 취재 현장을 누비다가 2008년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청와대 홍보비서관'메시지기획비서관'정책기획관'기획관리실장을 역임했다. 그는 청와대 근무에 대해 "경북 동해안 원자력 클러스터, 공기업 혁신도시 이전이 늦어질까 봐 적극 추진했지만 기대만큼 속도가 나지 않아 아쉽다"며 "일본 후쿠시마 지진 이후 원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세계 주요 국가 가운데 원전을 포기한 나라는 없다"고 강조했다. 가족으로는 부인 김경희(54) 씨와 1녀 1남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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