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구청들이 도심 속 폐'공가(버려진 집이나 빈 집)를 공원, 주차장, 텃밭 등으로 바꾸는 개선사업을 벌이고 있으나 부족한 예산 때문에 여전히 방치된 곳이 많아 겨울철 화재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폐'공가에 버려진 쓰레기가 불쏘시개가 돼 대형 화재로 이어질 수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20일 찾아간 대구 동구 효동로 2길(효목동) 한 가건물 식당은 얼마 전 일어난 화마(火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화재 원인을 찾느라 건물 주위엔 '출입금지'라 쓰인 노란색 경찰저지선이 둘러져 있었다. 그을음에 뒤덮인 건물 안엔 타다 만 잡동사니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곳은 며칠 전 불이 나 건물 내부(24㎡)가 모두 탔다. 다행히 1년 전부터 문을 닫은 빈 가게여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인근에 음식점 등 가게들이 밀집해 있어 불이 옮아 붙었다면 큰일이 날 뻔했다.
이처럼 도심의 폐'공가가 화재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노숙인이나 집을 나온 청소년들이 추위를 피하려 건물 안에 들어가 불을 피우는 경우가 많고, 행인들이 내다버린 쓰레기에 담뱃불이 닿으면 화재로 이어질 수 있어 시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폐'공가는 주로 북구와 동구, 남구, 중구 등에 밀집해 있다. 재개발사업이 미뤄져 방치된 낡고 오래된 주택이 많아서다.
같은 날 오후 동구 아양로 11길(신암동)에서 빈집 하나를 발견해 안으로 들어가 봤다. 큰길에서 20m 정도 골목길을 따라 들어간 이곳은 2년 전 불이 나 나무 기둥이 숯처럼 됐다. 대문은 녹이 끼어 있었고 안에는 TV와 커튼, 플라스틱 박스, 스티로폼 조각 등이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다. 슬레이트 지붕도 절반이 떨어져 나간데다 사람들이 버린 옷과 각종 쓰레기가 더미를 이뤘다. 만약 담뱃불이라도 떨어지면 금세 불이 날 것 같았다.
중구에서도 동덕로(동인동)에서 골목을 따라 10m를 들어가니 빈 주택이 나왔다. 1975년 지어진 이 건물 안 역시 비닐봉투 등 사람들이 내다버린 생활쓰레기가 가득했다. 반 이상 허물어진 벽은 검게 그을려 있어 불을 지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곳에서 불이 난다면 금방이라도 옆 건물로 옮아 붙을 상황이었다.
실제 화재로 이어진 사례도 많다.
지난해 10월 22일 오전 2시 45분쯤 수성구의 한 폐가에서 불이 나 소방관들이 확산을 막느라 애를 먹었다. 같은 달 24일 오전 10시 35분쯤에도 중구의 빈 의류창고에서 불이 났다. 두 곳 모두 수북이 쌓인 쓰레기가 불쏘시개가 돼 순식간에 큰불로 이어졌다.
우명진 대구소방안전본부 예방안전과장은 "겨울엔 추위를 피하려 몰래 빈집에 들어가 불을 피우는 경우가 많아 화재 발생 위험이 높다"며 "대부분 골목 안에 있어 불이 나면 소방차 접근이 어려워 자칫하다간 큰불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구청들도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중구청은 지난해 조사를 벌여 643채의 폐'공가를 확인한 뒤 이곳을 텃밭이나 주차장 등으로 정비하고 있다. 남구청은 빈집을 철거해 주민 쉼터로 활용하거나 양호한 곳은 수리해 무료로 임대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동구청도 403채의 폐'공가를 상태별로 등급을 매겨 정비에 나서고 있다.
동구청 복지정책과 관계자는 "방치된 폐'공가는 미관을 해칠 뿐 아니라 화재 발생 가능성도 커 개선사업을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제한된 예산 등으로 말미암아 한꺼번에 정비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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