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건강편지] "이래 사는기 사는기가?"

사람들이 불치병에 걸려 호스피스 병동에 오게 되면 두 번을 슬피 운다. 입원하는 날과 임종실로 옮기는 날이다. 입원하는 날에는 환자가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없구나!"해서 서글피 울고, 임종실로 옮기는 날에는 가족들이 "이제 진짜 가는구나" 해서 구슬피 운다. 12살짜리 딸 아이를 떠나보내며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에게 일일이 감사인사를 하는 침착한 부모가 있는가 하면, 92세에 숨을 거두면서도 떠나는 것이 아쉬워 역정만 내다가 임종에 이르는 환자도 있다.

죽음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항상 일찍 찾아온다. 게다가 난생처음 겪는 불안이 엄습해오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반응을 보인다. 75세 비호즈킨스 림프암 환자가 있었다. 소장부터 시작한 림프암이 위장을 꽉 막아 레빈튜브(위액을 배출하기 위해 코에서 위장으로 가는 다란 호스를 삽입하는 것)를 연결했다. 죽을 때까지는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다. 그나마 물은 마실 수가 있어 바짝 마른 입을 축인다. 목구멍은 아직 레빈튜브에 적응하지 못해 간질간질 불편하다. 숨이 차서 산소를 쓰니까 오른쪽 콧구멍에는 레빈튜브와 산소호스까지 두 개가 꽂혔다. 목숨은 큰 비닐 팩에 든 우윳빛 수액제로 간신히 버텼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어디 불편하신 데는 없나요?"라고 하니, "이래 사는기 사는기가?"라고 하셨다. 재순 할머니는 올해가 결혼 60주년이다. 할머니는 치매에다 말기 위암환자여서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 중이고, 할아버지는 후두암을 1년째 앓고 있다. 아침 9시가 되면 할아버지는 양복차림에 면도를 말끔히 하고 할머니를 찾아온다. 겉으로 봐서는 암환자처럼 보이지 않는다. "할아버지 암은 괜찮으신 거죠?"라고 물으니, "내가 암은 얼마든지 이길 자신이 있어. 근데 이겨서 뭐 하겠노?"라고 하신다.

말기암 환자가 되면 환자와 가족은 육체와 정신적으로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을 맞닥뜨린다. 상상하지 못했던 구차한 모습으로 마지막을 보낼 때쯤이면 원하지 않았던 시간이 살다 남은 찌꺼기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약한 정신 때문이 아니라 몸이 약해지기 때문에 마음이 통째로 흔들린다. "잠자듯이 가는 그런 약 있잖아"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말기 암환자가 안락사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비참한 마지막은 말기암이라는 내 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다 남은 삶이라고 쓰러져 버리는 내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떠날 사람은 남아있을 이를 위해 조금 남은 삶을 살아가고, 남아있을 사람은 떠날 이가 세상에서 사랑받다가 가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도록 노력하면서 조금 덜 힘들게 보내는 사람들이다. 처음과 마지막까지 모두가 내 인생이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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