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키워드로 생각해보는 나, 우리, 우리나라

오늘 95주년 3·1절

오늘은 3'1절입니다. 오늘이 금요일이나 월요일이 아니어서 아까우시죠? 그렇기도 하겠네요. 직장인들에게 하루의 공휴일이 얼마나 소중한가는 물어보나마 나겠죠. 독자 여러분은 오늘 무엇을 하시나요? 토요일 일요일을 집에서 쉬면서 충전하실 건가요? 가족들 손을 잡고 나들이를 가시나요? 아니면 친구들과 오랜만에 봄이 오는 길목, 남쪽 산으로 산행을 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잠깐, 오늘은 그냥 휴일이 아니잖아요. 오늘의 평화로운 휴식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잖아요. 오늘의 일상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있었다는 건 잊지 말아야겠죠? 가족과 나들이 가시기 전, 친구들과 산행 후 집에 돌아와서, 오늘이 가기 전 한 번씩 생각해보고 지났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3'1절 의미에 대해, 우리나라에 대해. 그래서 매일신문은 오늘, 몇 가지 키워드를 뽑아봤습니다. 함께 생각해 봤으면 하는 바람으로.

◆위안부 할머니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이분들을 본 적이 있으시겠죠? 그분들의 얼굴에 깊게 팬 주름을 보노라면 그분들이 견뎌왔을 그 고통이 저절로 느껴집니다. 꽃다운 어린 처녀들이 어느 날 갑자기 전쟁터로 끌려가 짐승 같은 군인들의 성 노리개로 내던져졌습니다. 지금도 서울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는 매주 수요일 집회가 열립니다. 피해 할머니들과 시민들이 모여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라며 일본에 항의하는 이 집회는 벌써 1천 회를 넘겼습니다. 지금은 매주 5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석해 할머니들에게 힘을 실어줍니다. 하지만 아직 메아리는 없습니다. 소녀들은 백발의 할머니들이 되었지만 그 수십 년을 보상해줄 어떤 것도 없습니다. 이제 남은 분들은 겨우 55명.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요즘 이 사람을 보면 할 말이 없습니다. 가관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들을 '모신'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이제 놀랄 일도 아니게 만들어버린 사람이죠. 며칠 전엔 시마네 현이 개최한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의 날' 행사에 차관급을 보내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신문 기사나 뉴스를 볼 때마다 온갖 궤변을 늘어놓은 모습은 이제 식상할 정도입니다. 이제는 장관들까지 나서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표현할 정도이니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사람들의 생각들을 바꾸어줄 수 있을까요.

◆손기정의 일장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얼굴은 환해야 하지만 1936년 베를린에서 손기정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그는 월계관을 쓴 채 고개를 숙였습니다. 동메달을 딴 남승룡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장기가 오르고, 일본 국가 '기미가요'가 흘러나올 때 손기정은 월계수 나무로 옷에 새겨진 일장기를 가렸습니다. 가슴 아픈 우리 역사의 한 장면입니다. 그는 왜 승리하고도 가슴을 움츠려야 했을까요. 올림픽에, 월드컵에서 선수들 가슴의 국기는 그들에게, 국민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김연아의 태극기

올해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는 마지막 연기를 했고 전 세계는 그녀의 연기를 숨죽여 지켜봤습니다. 비록 석연찮은 판정으로 은메달을 받았지만 전 세계 사람들은 '연아 킴'을 외치며 한 시대를 풍미한 피겨 여왕의 마지막을 환송했습니다. 김연아 선수뿐만 아니라 스피드스케이팅 500m 이상화 선수, 쇼트트랙 박승희, 심석희 선수 등 이번 동계올림픽에 우리나라의 이름을 드높인 선수들이 많았습니다. 김연아 선수가 어깨에 두른 태극기를 보며 그 아름다움을 당신도 느꼈습니까. 소치 하늘에 올라가는 태극기를 보며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가수 김장훈

김장훈 씨의 별명은 '독도 지킴이'입니다. 그는 노후보장 연금보험을 깨면서까지 뉴욕 타임스 스퀘어 빌보드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독도 영유권을 알리는 광고비를 부담하기도 했습니다. 김 씨의 활동은 독도 홍보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트루스 오브 독도'(www.truthofdokdo.com) 사이트를 만들고, 반크(사이버 외교사절단)와 함께 활동하며 일본해를 동해로 바로잡는 노력도 아끼지 않습니다. 독도가 한국 땅임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쓴 돈만 30억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는 무엇 때문에 '사서 고생을 하는' 걸까요.

◆재외 동포

1902년 제물포항에는 122명의 한국인이 미국 하와이로 떠나는 '갤릭호'에 몸을 실었습니다. 이들은 정부가 인정한 첫 공식 이민자였습니다. 하와이 이민은 당시 일손이 부족한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에 한인 노동자들을 이주시켜 돈을 벌게 하고, 미국과 우호 관계를 유지해 일본의 침탈 야욕도 억제하겠다는 광무 황제의 전략에 따른 조치였습니다. 1960년대에는 외화 벌이를 위해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가 파견되었습니다. 힘없고 가난했던 시절, 눈물의 이별을 했던 이들이 지금은 세계 곳곳에서 코리아를 알리는 민간 외교관들이 되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재외 동포(700만여 명)가 많은 나라입니다.

◆한국의 글로벌기업

동포들의 초기 해외 이민이 가난의 눈물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오늘날 우리 기업들의 해외 진출은 눈이 부신 것입니다. 해외에 나가보면 공항에서부터 익숙한 우리나라 기업들의 광고가 눈에 들어옵니다. 외국 사람들의 손에 들려 있는 휴대전화도 우리 기업들이 만든 것입니다. 숙소에 들어가서 TV를 보니 우리나라 기업 브랜드가 붙은 TV입니다. 해외 대도시 한복판에 높이 솟은 우리나라 기업 광고판을 보셨나요. 상점마다 멋지게 진열된 'made in Korea' 제품들을 보셨나요.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독립만세운동

대구 근대골목 제2코스에는 '3'1만세운동길'이 있습니다. 제일교회 신관 왼편의 3'1운동 계단에서부터 동산박물관을 지나 이어진 이 길은 계성학교, 신명학교, 대구고보, 성서학당 등에 재학 중이던 각 학교 학생들이 3'1운동 집결지인 동산병원 내 선교사주택 부근으로 가기 위해 지나던 길입니다. 사실 3'1절이라 하면 가장 많이 생각나는 것이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모습입니다. 우리에게는 방송 화면에서나 다시 볼 수 있는 한 장면으로만 기억되는 것 같습니다. 정말 그것이 그냥 '한 옛날 얘기'일 뿐일까요.

◆민족대표 33인

3'1운동은 민족대표 33인의 주도 하에 이뤄졌습니다. 독립에 대한 그분들의 열정과 헌신 덕분에 우리는 자랑스럽게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분들은 당시 어떤 마음으로 독립만세 운동을 계획하셨을까요? 독립을 위해 자신의 희생을 담보로 만세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대구와 관계가 깊은 인물이 2명 있습니다. 바로 대구 출신의 이갑성 선생과 6'25전쟁 때 대구에서 별세하신 오세창 선생입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도 떨쳐 일어날 수 있는 용기가 있을까요.

◆기미독립선언서

'오등(五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宣言)하노라'로 시작되는 기미독립선언서, 다들 기억나시나요? 교과서에 실려 있어서 무턱대고 외웠던 기억 다들 가지고 있으실 겁니다. 혹시 학창시절 이후에 기미독립선언서 내용을 다시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 속에는 우리 조상의 독립에 대한 뜨거운 염원과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뜨거운 붉은 마음은 95년 전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유효한 것이 아닐지요. 오늘날의 독립선언서를 다시 쓴다면 어떤 내용일까요.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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