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온 국민의 마음에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사고를 직접 경험한 생존자나 사망자'실종자의 가족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가슴 저리는 슬픔에 잠겨야했다. 시간이 지나면 충격은 무뎌지기 마련이다. 슬픔은 가슴 깊은 곳에 묻고 평화롭던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충격과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과거에 정체되는 이들도 있다.
극심한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때문이다. 조금씩 삶을 갉아먹다가 스스로를 모두 잠식해버리며, 세월호 참사와 같은 극단적 사고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언제든지 겪을 수 있는 질병이다.
◆흉터로 곪은 정신적 외상
외상은 흉터를 남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기억에 남은 큰 흉터로 고통받는 질병이다. 각종 재난이나 교통사고, 전쟁, 성폭력 등 평소 접하기 어려운 심리적, 신체적 상처를 겪고 난 뒤 시간이 흘러도 몸과 마음이 당시 상황을 기억하며 긴장상태에 머물러 있는 증상이다.
이 장애를 겪는 환자들은 몸은 현재에 있지만 정신은 과거에 머물러있다. 때문에 현재에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이나 사건들을 과거와 연관시키고 바뀐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환자들에게는 일반적으로 3가지 증상이 동시에 나타난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당시 충격과 기억을 떠올리며 괴로워하거나 악몽을 자주 꾼다. 감정이 무감각해지고 멍하게 있는 시간이 잦아진다. 계명대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정범 교수는 "세월호 참사를 겪은 생존자'희생자'실종자 가족'친지 등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다"면서 "당시 상황을 연상케하는 시간이나 장소, 물건, 소리, 상황 등을 회피하며 짜증을 자주내고 예민해하는 증상을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지금 느끼는 슬픔과 애도의 감정이 모두 장애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보통 충격을 받고 나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은 급성 스트레스 반응으로 대부분 한달 이내에 사라진다. 그러나 3개월 이상 증상이 지속된다면 장애를 의심해야한다.
이런 장애는 일상 생활에서도 충분히 겪을 수 있다. 교통사고는 가장 빈번한 유형이다. 심각한 교통사고를 경험한 이들은 자동차 경적소리만 울려도 동공이 커지고 온 몸에 식은 땀을 흘린다. 심지어 자동차 문을 세게 닫거나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에도 깜짝 놀란다.
가정폭력과 성폭력, 학교폭력, 산업재해 등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돈을 떼였거나 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해도 나타날 수 있다.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층간소음으로 인한 이웃간의 갈등이나 고통도 원인이 될 수 있다.
◆한국사회에 남은 강한 후유증
사고를 직접 경험한 생존자나 사망자'실종자의 가족이 아니어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빠질 수 있다. '대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다. 자신이 직접적으로 겪은 충격이 아닌데도 가까이서 지켜보거나 공감하면서 정신적 외상을 입는 경우다.
현장에서 구조 작업에 참가했던 경찰관'잠수사'소방관 등과 친구가 떠나는 상황을 경험한 단원고 학생들과 이웃'친지, 시시각각 언론보도를 접한 국민들도 간접적인 충격을 받는다.
특히 과거에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던 경우 '대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가령 과거에 가족이나 가까운 이들을 사고로 잃었거나 생명에 위협이 될 정도의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했던 경우, 평소에도 걱정이 많고 우울한 기분이 있는 경우다.
타인과 공감을 많이 하는 여성이나 아동'청소년도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불안과 스트레스, 예민함, 눈물, 악몽 등이 나타나고 계속 운다거나 짜증, 심한 우울감, 분노 폭발, 허무감, 무기력감 등이 들기도 한다.
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종훈 교수는 "세월호가 더욱 충격이 큰 이유는 '믿음'이 깨졌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말을 잘 따랐기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는 상황이 아이들에게 충격의 강도를 더욱 높인다"고 했다.
희생당한 학생 또래의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녀가 세월호 침몰 사고 뉴스에 지나치게 심취해 있진 않은지 관찰하는 게 좋다. 이종훈 교수는 "부모와 함께 뉴스를 보거나, 아이가 보거나 들은 내용을 부모와 대화하는 것도 좋다. 비난보다는 현재 기분과 심정을 스스로 풀어내도록 들어주고 격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알코올'약물 중독 이어질 수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치료가 쉽지 않다. 주의깊게 살피지 않으면 병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신적 외상과 기억은 정신력이나 의지로 잊히지 않는다. 뇌에 있는 공포나 기억의 회로가 활성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만 잊어라'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치료는 주로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병행한다. 약물은 주로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로 불리는 항우울제를 먹는다. 기분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농도가 줄어드는 것을 막는 약으로 적어도 8주 이상 복용하며 1~2년 간 지속적으로 치료를 해야한다. 약물 치료는 공포 현상이나 기억을 가라앉히는데 도움이 된다.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지만 오랫동안 방치될 경우 치료가 굉장히 어려워진다. 성격과 증상이 얽혀버리기 때문에 증상만 떼어내서 치료하기 어렵다. 고통을 잊기 위해 애쓰다보면 우울증에 빠지거나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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