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사람을 전혀 알아보지 못해요

수년 전 일이다. 전화를 받았다. "교수님, 어제부터 그이가 갑자기 사람을 못 알아봐요. 나도, 애들도 그리고 어머님도." 처음엔 나도 어리둥절했다.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람을 못 알아본다니…. "정신도 좀 이상한 것 같아서 신경정신과 병원에 가서 CT 촬영도 했어요. 사진상 아무 이상이 없대요. 무슨 병인지 모르겠다고 해서 이렇게 집에 돌아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일단 환자를 병원에 모시고 오도록 했다.

환자를 보니 사람이 멍했다. 한쪽 수족이나 뇌신경 마비는 없었다.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고 단지 "허 참, 허 참"이란 말만 반복했다. 하루 전 찍어온 CT를 검토했다. 특별한 이상소견은 없었다.

그렇다면 무슨 병일까? 갑자기 이상해졌고 병이 발생한 후 하루 만에 촬영한 CT 소견이 정상이니 뇌혈관이 막혀 뇌경색이나 감염성 질환에 걸린 것이 아닐까? 그들 병의 초기에는 CT 상 이상 소견이 발견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사람을 갑자기 못 알아보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언뜻 얼굴인식불능증(prosopagnosia)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관자엽(측두엽) 하부 내측에 이상이 생겼을 수도 있겠구나. 다시 MRI 촬영을 했다. 사진은 양측 관자엽 하부와 이마엽(전두엽) 밑 부분에 심한 뇌부종 소견을 보였다. 추후 척수액 검사 등을 시행해서 단순헤르페스뇌염(herpes simplex encephalitis)으로 진단했다.

단순헤르페스뇌염은 바이러스가 삼차신경절이나 후각망울을 통해 뇌로 들어와 관자엽의 하부 내측이나 이마엽의 안와 부분을 망가트린다. 관자엽 뇌전증(간질), 성격변화, 정신병 행동 등의 증상을 보이며 항바이러스 제제를 사용해 치료한다.

그렇다면 친숙한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얼굴인식불능증은 어떻게 생겼는가? 우리들이 사물이나 인물을 보면 그들의 정보는 뒤통수엽(후두엽)의 시각피질로 들어간다. 거기에서는 사물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지 못하고 복경로(腹經路)를 따라 관자엽의 밑 안쪽 영역에 도달해야 비로소 그들을 인식한다. 특히 방추형 이랑(fusiform gyrus)이라는 부분은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는데 필수적인 부분이어서 그곳에 손상을 입으면 배우자나 아이들같이 친숙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 심한 경우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도 몰라본다. 앞의 환자는 헤르페스바이러스가 방추형 이랑을 포함한 관자엽 하부를 손상시켜 아내도, 자식도 그리고 부모도 알아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문득 거울을 본다. 거울 속 얼굴이 낯설다. 저 얼굴이 젊어서부터 내가 그려왔던 60대의 내 얼굴이란 말인가?

임만빈 계명대 동산병원 신경외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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