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약전골목

'일찍이 아버지께선 해마다/고향의 앞바다 빛깔이 유난히 짙어/차갑게 빛날 때면/밤일수록 슬피 우는/윤선을 타고/ 나의 알 수 없는 먼먼 영(令)으로 가시고/…/젊은 아버지는 이렇게 이곳 낯설은 거리에 내려 추운 날개를 하고/장기(帳記)를 들고 당재(唐材)초재를 뜨셨던구나/내 오늘 장사치모양 여기에 와서/먼 팔공산맥이 추녀 끝에 다다른 저잣가/술집 가겟방에 앉아/요원한 인생의 윤회를 적막히 느끼었노라.'

경남 통영 출생이지만 대구'경북에 오래 머물며 이 고장 사람들과 막역한 관계를 맺었던 청마 유치환 시인은 해방 이듬해 발표한 '대구에서'란 시에서 약령시를 '먼먼 영'으로 표현하고 있다. 대구의 한 술집에 앉아, 한약방을 하던 아버지가 약재를 구하려고 약령시(藥令市)를 찾아 떠나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자신에까지 이어지는 대구와의 묘한 인연을 노래한 것이다.

청마가 그랬듯이 대구약령시는 예로부터 그렇게 멀고도 신령스런 곳이었다. 조선 후기 경상감영 객사 주변에서 개시된 이래 한약재 계절시장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누리며 오랜 세월 국가 경제에 상당한 기여를 해 온 것이다. 영남의 중심 도시로 낙동강과 금호강이 인접한 교통요지인데다 부근의 시군지역이 모두 한약재의 명산지였던 대구의 지정학적 여건 덕분이었다.

규모가 커지면서 읍성 남문 밖인 오늘의 약전골목으로 이전한 것은 1907년 5월의 일이다. 해방 후에도 대구를 상징하는 명물거리의 면모를 유지하며 상설 한약재 전문시장으로 명맥을 이어오던 약전골목이 가파른 사양길을 걷고 있다. 인근에 현대백화점에 들어선 것이 되레 악재로 작용한 것이다. 임대료가 오르면서 한방 관련 점포가 하나둘씩 밀려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같아서는 5~10년이나 버티겠느냐는 절박한 목소리도 나온다. 350여 년의 전통을 지닌 약령시의 퇴락한 현주소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대구의 도심재생사업과 골목투어 열기가 고조되고 있고, 외국인 의료관광 프로그램이 적극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바라보는 약전골목의 퇴색이다. 팔공산과 더불어 청마의 시심(詩心)을 불러일으켰던 약전골목이 유구한 역사성과 그윽한 향취를 잃어가는 모습을 두고만 볼 것인가. 대구시의 정책적 결단과 대구'경북 시도민의 자존적 관심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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