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간을 망가뜨린 독버섯

2년 전 이맘때 태풍 '산바'가 지나갔다. 그해엔 크고 작은 24개의 태풍이 지나갔고 태풍마다 폭우를 몰고 왔다. 태풍이 지나간 산에는 여러 가지 버섯이 피어올랐다.

도심 외곽에 사는 아주머니 두 명이 '꾀꼬리버섯'이라며 채취해 먹었다가 응급실을 찾았다. 독버섯이었던 모양이다. 한 명은 경미한 손상이었지만 다른 한 명은 간이 많이 손상돼 간 효소가 정상치의 100배를 넘었고, 3일 뒤 혼수상태에 빠졌다. 간 이식을 해야만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이어서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 뇌사자 간 이식을 위한 장기분배를 신청했다.

생명이 백척간두에 처한 환자에게 간 이식은 살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다. 독버섯에 의해 간이 파괴돼 뇌사에 빠진 전격성 간부전 환자는 응급도 1위이기에 우선적으로 간을 제공받을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장기이식 등록신청한 지 이틀 만에 전북 익산에서 뇌출혈로 의식을 잃은 중년 남성의 장기를 가족이 기증해 우리 환자에게 배정됐다.

먼 지역에서 뇌사 공여자의 간을 떼어 오는 과정은 군부대의 작전과 같다. 뇌파검사에서 아직 파동이 남아 있어 뇌사 판정은 다음 날 이른 아침으로 미뤄졌다. 이튿날 아침 예정대로 실시된 뇌파검사에서 뇌파가 거의 사라져 최종 뇌사판정이 이루어졌다. 우리 병원의 간 적출팀 김 교수와 연구강사 및 코디네이터가 함께 오전 10시 익산을 향해 출발했다. 오후 2시 30분에 적출 수술이 시작됐다. 기증자의 간 조직을 검사해 건강하다는 소견이 나왔고 무사히 간을 적출했다. 돌아올 때는 전북 서부지방산림청의 도움으로 오후 5시에 헬기를 타고 이송한다는 희소식까지 있었다. 느긋하게 기다리던 우리 이식 팀도 바빠졌다.

간 이식 수술을 앞두고는 언제나 긴장된다. 마취팀과 간호사 등 수술실 준비도 서슴없이 진행됐다. 오후 6시, 간 적출팀이 대구공항에 도착했다는 전갈이 왔다. 개복 후 병든 간을 완전히 들어내고 신속히 혈관과 담관을 이어 붙였다. 간 아래위 대정맥과 간문맥을 단단히 잡아 두었던 3개의 혈관 겸자를 풀고 혈류를 재개통시키니 차갑고 창백하던 간이 불그스레해졌다. 생명이 새롭게 탄생하는 순간이다. 바닥이 쩍쩍 갈라지도록 마른 논에 양수기로 퍼올린 물을 붓는 것 같았다. 오후 10시쯤 수술이 마무리됐다. 도플러 초음파 검사로 간동맥과 문맥 등 혈류를 검사해보니 신호가 정말 좋았다. 환자도 순조롭게 회복돼 3주 뒤 퇴원했다.

수술 후 2년이 지난 얼마 전 환자가 면역억제제 투여차 진료실을 찾았다. 얼굴이 화사하게 피어오른 아주머니와 나는 이제 그냥 덤덤히 인사를 나눈다. "교수님 덕분에 이번 추석 명절도 맞을 수 있게 됐어요." "아주머니 덕분에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걸요." 가벼운 인사가 오갔다. 커다란 충격도 시간이 지나면 일상이 되는 법이다.

강구정 계명대 동산병원 간담췌장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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