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과거를 보려면 박물관에 가고, 미래를 보려면 도서관에 가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요즘 같은 지식정보사회에서 더욱 강조되고 있다. 공공도서관이야말로 지식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모든 시민에게 보장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문화를 이끌어가는 미국, 영국 등 주요 선진국이 일찍부터 공공도서관을 '시민의 대학'으로 활용하는 이유다.
매일신문 기획취재팀은 대구지역 공공도서관 실태를 살펴보고, 지역의 미래를 공공도서관으로부터 만들어내고 있는 미국을 통해 우리 공공도서관이 나아갈 방향을 5차례에 걸쳐 살펴봤다.
◆넘쳐나는 도서관 푸어들
두 아들(고교생과 초등생)을 둔 양정희(47) 씨는 7년 전 대구 남구 대명동으로 이사 온 뒤 공공도서관을 한 번도 찾지 않았다. 남구에 있는 공공도서관은 앞산 아래에 자리한 남부도서관 단 한 곳. 책 한 권을 보기 위해 양 씨는 버스를 30여 분 탄 뒤, 높은 계단을 올라야 한다. "잠시 도서관에 들르려 해도 2시간은 잡아야 해요. 둘째 아들은 먼 거리 때문에 아직까지도 공공도서관에 가본 적이 없어요."
대구에 '도서관 푸어'(도서관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가 넘쳐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발표한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대구지역 성인의 10명 중 7명은 지난 1년(2012년 10월~2013년 11월) 간 공공도서관을 이용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학생도 10명 중 4명은 같은 기간 공공도서관을 방문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도서관 푸어의 양산에는 열악한 공공도서관 인프라가 한몫을 하고 있다. 이달 1일 현재 대구에 위치한 공'사립 공공도서관은 모두 30개다. 도서관 한 곳당 이용자 수가 무려 8만3천여 명에 달한다. 하지만 공공도서관 접근성 확대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중앙도서관에 따르면 시민들의 접근성 편의를 돕기 위해 5개 시립도서관이 운영하던 이동도서관도 현재 폐쇄 방안이 논의 중이다.
◆사는 곳에 따라 다른 공공도서관
'도서관 푸어'의 빈도는 구군에 따라 다르다. '도서관 푸어'가 가장 많은 지역은 대구 남구다. 남구의 경우 현재 16만6천여 명의 주민이 남부도서관 한 곳만을 이용하고 있다. 공공도서관이 상대적으로 많은 달서구(8개), 수성구(6개)와 접근성 차이가 갑절 이상이다. 공공도서관이 '공공재'임에도 불구하고 사는 지역에 따라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달라지는 것이다.
구'군별 편차는 시설뿐만 아니라 사서와 장서 수에서도 드러난다. 서구 어린이도서관의 경우 사서직이 한 명도 없지만, 수성구에 위치한 범어'용학도서관은 각각 21명, 16명의 사서가 있다. 장서 수 역시 범어'용학도서관은 10만 권을 넘는 데 비해 안심(동구)'본리(달서구)도서관은 5만여 권밖에 되지 않는다. 각 지역별 도서관 인프라의 양극화는 대구시가 공공도서관 건립을 중단한 2003년 이후 더욱 심해졌다.
김종성 계명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도서관은 정보 취약 계층이 많은 지역부터 체계적으로 제공되어야 하지만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살림살이에 따라 제각각 도서관이 세워지다 보니 도서관의 각 구군별 빈부격차가 생겨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서관 정책에 두 손 놓은 대구시
지역에 균형적인 공공도서관 생태계를 만들어야 할 대구시는 정작 도서관 정책에 손을 놓고 있다. 도서관법에 따르면 지역 도서관 관련 정책을 수립'시행하는 것은 지자체 몫이다. 이에 따라 대구시는 지역 도서관 발전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대구시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도서관정보서비스 위원회를 구성하고, 지역 도서관 정책을 수립'시행할 대표도서관을 지정해야 한다. 하지만 대구시는 지난 2011년 대구 대표도서관 지정만 마쳤을 뿐 위원회는 구성조차 하지 않고 있다.
대표도서관으로 지정한 중앙도서관도 운영주체 이원화로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현재 중앙도서관은 시교육청이 위탁운영하고 있어 중앙도서관에 대한 인사'예산권은 모두 시교육청이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대표도서관으로서 도서관 정책을 구상해도 실현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선인식(RFID) 도서관리시스템 도입이 대표적이다. 중앙도서관은 대표도서관으로서 무선인식 시스템 확대설치를 제안했지만 대구시의 올해 예산에 반영되지 않았다.
손영주 중앙도서관 관장은 "시가 준 대표도서관 운영비 5억원과 직원 2명이 지원의 전부"라며 "어쩔 수 없이 예산 범위 내에서 통합도서관 시스템 운영, 상호대차서비스. 전자도서관 구축 등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영진 시장, 도서관 정책에 눈 떠야
대구시에는 도서관 정책을 주관할 전담부서나 직원도 없다. 현재 대구지역 도서관 업무는 교육청소년정책관실 평생교육계가 맡고 있다. 그나마 도서관 업무를 담당하던 직원이 1명 있었지만 올 8월 대구시 조직개편과 함께 담당 직원도 없어졌다.
전문가들은 공공도서관 생태계 정비에 대구시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허경자 대구공공도서관 사서회 회장은 "대표도서관은 지역의 도서관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다. 하지만 교육청이 위탁운영하는 형태로는 한계가 있다"며 "대구도 다른 시'도처럼 직영 대표도서관을 새롭게 건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문필 교육청소년정책관 평생교육계 계장은 "늦었지만 대구시도 직영 대표도서관 설립, 권역별 1도서관 등 도서관 확충 기본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선화 기자 freshgirl@msnet.co.kr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