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모독 발언이 도를 넘었다는 국무회의 석상의 일갈이 발단이었다. 그 한 마디에 장관들과 검경이 일사천리로 움직였다. 이틀 만에 대책회의가 열리고 허위사실 유포 대응방안이 발표되었다. 전담수사팀을 꾸리고 SNS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겠다는 엄포도 빠지지 않았다. 아마도 대통령의 7시간을 둘러싼 억측을 비롯해서 이런저런 비판으로 심기가 크게 상했을 것이다. 그래서 국제 관행을 깨고 외국 언론사 기자까지 불러다 심문하는 판국에, 나라의 질서를 바로잡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길 법했다. 그러자 소위 사이버 망명이 시작되었다. 한 달 새 300만 명이 텔레그램이라는 해외 SNS로 건너가 둥지를 틀었다. 그래도 검찰은 사이버 수사 방침을 바꾸지 않겠다고 결기를 세우고 뿔 난 시민단체들은 반대 행동을 선언했다. 정보화 강국이라는 나라에서 소란의 줄거리가 이러하다.
두 가지 단상이 떠올랐다. 고금의 우화인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첫 번째다. 요즘 세상에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인지 아닌지는 별 관심사가 아니다. 애써 납득시킬 요량이 아니라면 무던히 흘려버리면 사그라질 일이다. 그만큼 세상살이가 분주하고 눈 돌릴 일이 많다는 뜻이다. 문제는 임금님 귀 운운한 탓에 볼기짝을 얻어터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감찰관리들이 임금님 하명으로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고 나서면 민심이 흉흉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카카오 국적을 버리고 텔레그램국으로 건너간 망명객들의 매몰찬 애국심을 탓하기가 어렵다.
두 번째는 인터넷이 막 등장한 무렵의 미국 이야기다. 1995년 타임(TIME)지는 인터넷 영상물의 80% 이상이 음란물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미국 사회가 경악했음은 물론이다. 의회는 속전속결로 규제법안을 통과시켰고 클린턴 대통령도 곧장 서명했다. 제대로 된 토론도 단 한 표의 반대도 없었다. 통신품위법(Communication Decency Act)으로 불리는 세계 최초의 인터넷 규제법률은 이렇게 졸속으로 탄생했다. 그러나 얄궂게도 이 법은 시민단체가 제기한 위헌 소송에 이듬해 폐기되고 말았다. 이러한 반전에는 참고할 만한 대목이 있다. 우선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메리칸온라인 같은 세계 굴지의 IT 기업들이 변호인단과 소송 자금을 지원했다는 것이다. 온라인 시장을 잃기보다는 차라리 정부와의 불편한 관계를 택하자는 취지였다. 다음으로 연방대법원이 표현의 자유가 검열 효과보다 더 큰 이익을 준다고 판시한 것이다. 이 판례는 민주주의 국가의 인터넷 규제 준거로 확산되었다. 훗날 타임지의 기사는 오보로 판명되었다.
우리나라는 매우 강고한 온라인 규제 법률과 관행을 갖추고 있다. 이 때문에 2002년 전기통신사업법 불온통신 조항이 위헌 판결을 받은 이래, 관련 법률들이 끊임없이 송사에 휘말려왔다. 인터넷실명제에 대한 위헌 판결은 익히 알려진 예다. 그리고 정치적 의도를 가진 규제 관행은 더 큰 문제이다. 촛불시위 당시에도 인터넷 게시판을 모니터링하겠다는 발상이 철퇴를 맞은 바 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네티즌 미네르바는 억울한 옥살이를 치렀다. 그를 잡아 가둔 전기통신사업법 허위통신 조항도 위헌 판결에 처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야당 인사와 대학생에 대한 카카오톡 감청이 논란을 빚고 있다. 반면 더욱 엄중히 다스려져야 할 국가기관의 위법은 허망하게 처리되고 있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을 다루는 검찰의 소극적인 행태가 그러하다. 게다가 정치에는 개입했으나 선거에는 개입하지 않았다는 사법부의 논리는 더욱 처연하기 짝이 없다.
앞서 말한 두 개의 단상은 카카오톡 논란의 본질이 정부 불신과 국민기본권 침해에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참고로 우리나라 국민의 정부 신뢰도는 25%로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속한다. 또한 프리덤하우스는 우리나라를 4년째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지정하였다. 이런 처지에 임금님의 비위를 판단의 잣대로 삼고 감시와 법으로 대응하는 방식은 온당하지 않다. 그렇다면 소통과 정치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보다는 민주적으로 선출되었으나 권위적으로 통치하는 리더십을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불합리한 규제 법률과 관행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어 합리적으로 정비하는 것이 순리이다.
장우영/대가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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