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삶 속에서-중국동포 한국 생활기] 그리운 그이들

굳게 닫혀버린 할아버지 방의 자물통을 보면서 내 마음이 닫혀버린 듯 허전하고, 두만강이 바라보이는 고향 산에 모시고 온 아버지가 스크린의 물상처럼 떠올라 마음 쓰립니다.

그 기숙사 문 앞으로 지날 때마다 내 마음에도 채워진 듯 커다란 자물쇠가 놓여 있습니다. 삐걱 문이 열리고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음 지으면서 나타나는 모습을 기대했지만 언제고 굳게 닫혀 있습니다.

어느 한여름 점심녘 햇볕이 따가운데 지나다 반쯤 열린 문틈 사이로 코를 고르게 고시며 쉬시는 할아버지 모습을 보았었습니다. 그때 문득 아버지의 수면이 눈앞에 떠올랐지요.

밭에서 일하고 돌아오시어 식사한 후 잠시 휴식을 취하느라 방 미닫이 문턱을 베고 누웠던 아버지가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었습니다. 얼마나 피곤하셨으면 다리를 토신채로 누가 들어가도 모를 지경으로 잠이 드셨을까 하는 안쓰러운 마음에 아버지의 다리를 들어서 살며시 내려 드리려던 찰나 아버지가 깨셨습니다. 어, 시간이 많이 지났구나. 아버지는 손 말씀을 하고는 바삐 일밭으로 향하셨습니다.

한국 어느 시골에 있는 회사에서 열심히 근무하면서 일 때문에 가끔 아버지를 잊다가 그 한국인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이는 일흔셋이라고 하는 연세에도 불구하고 저와 같은 회사에 취업을 하고 쓰레기를 주워서 소각, 처리하는 일을 위주로 하셨습니다. 자식이 넷이라고 하지만 다들 셈평(생활의 형편-편집자)이 피인 살림이 아니라서 부담을 적게 하고자 할머니와 따로 나와 일하며 산다고 하셨습니다. 회사 따라오다 보니 혼자서 평일에는 기숙사 생활을 하고 주말 휴일에야 할머니 보러 버스로 한 시간 거리인 집으로 다녀오는 나날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회사에는 연세가 지숙한 분들이 몇 분 계시지만 할아버지 연세가 제일 많고 공교롭게도 우리 기숙사 아래층에 자리 잡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휘청거리는 걸음걸이를 보면 자꾸 허리 휜 아버지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뻥 뚫린 듯 허허롭습니다.

할아버지는 늘 혼자서 일을 하셨습니다. 누구도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고 아는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회사 식당에서도 언제나 혼자 앉아서 식사를 했습니다. 특히는 할아버지가 부지런히 쓰레기를 줍고 음식물 쓰레기는 따로 분리수거하는 데도 다국인이 모여 사는 공장과 기숙사 구역에는 구석구석 또 더러워지고 그냥 그대로 방치되어 있을 때도 있습니다. 한여름 파리 떼들이 몰려들어 윙윙 성화를 부리는데다가 악취가 코를 찔러 할아버지가 그걸 다시 분리수거하고 밀차에 걷어 싣자니 얼마나 힘드실까요?

우리는 깨끗한 환경이 어떻게 오는지를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러운 쓰레기를 치우는 전문 일꾼마저 하찮게 여기는 게 일상적인 관습이 되어 있습니다. 그이 같은 분들이 없으면 이 세상은 그야말로 오염 천지에, 지구는 쓰레기장이 되고 말 것이겠지요. 그런 가장 더러운 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가장 존경받아야 하고 공신력이 있는 것임을 우리는 어찌 모를까요?

할아버지 노고를 생각하며, 그 연세에 외로웠을 아버지를 떠올리며 가끔씩은 쓰레기처리장에 널린 쓰레기들을 모아서 잘 정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같이 근무하는 동포들에게는 권고했지요. 쓰레기처리박스에 잘 분리, 정리해서 놓아두자고 말입니다.

굳게 닫혀버린 할아버지 방문의 자물통을 보면서 내 마음이 닫혀버린 듯 허전하고 두만강이 바라보이는 고향 산에 모시고 온 아버지가 스크린의 물상처럼 떠올라 마음 쓰립니다. 평소에 잘 해드리지 못하였고 아버지 발편잠(근심이나 걱정이 없어져서 마음을 놓고 편안히 자는 잠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편집자)을 자지 못하게 깨워 드렸고 일삼아 중고 물품이라도 수거하시는 아버지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 그것까지 한없이 미안했습니다. 제가 없는 동안, 자식이 중국에 돌아가는 동안 무탈하고 다시 빙그레 웃는 아버지 미소를 만날 것을 늘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는데 어느새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끝내는 지난겨울 아버지를 보내드려야 했네요.

이제 할아버지에겐 건강이 첫째지요.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초상화 같아서요. 아버지 몫까지 합쳐서 그 할아버지의 건강을 참말로 마음에 탑재합니다.

류일복(중국동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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