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면 어떻고 재즈면 어떤가, 우리가 교감하고자 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그저 한(恨)이요, 또 흥(興)이다. 음악의 역할은 이렇게 즐거움과 위로를 주는 데 있지 않은가. 그것처럼 음악 장르에 대한 구분은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내용으로 지난주 지면을 할애했다.
'구분 짓기' 못지않게 사람들은 '정의 내리기'를 좋아한다. 음악 장르에 대한 정의, 가령 클래식, 재즈, 가요를 설명하고자 애를 쓴다. '소리가 갖가지 형식으로 조화돼 감정을 나타내는 시간 예술'이 통상적으로 내리는 음악의 정의라고 한다면, 길고 지루하면 클래식, 조금 신나면 재즈일까.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사랑에 대한 정의가 저마다 다르듯 감정을 나타내는 모든 것들은 정답이 있다고 할 수 없으니 말이다. 가수 김광석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했으며, 반면에 작가 피에르 뒤셴(Pierre Duchesne)은 아프니깐 사랑이라는 동명의 책을 썼다. 또 가수 태진아는 사랑은 아무나 하나며, 또 누가 쉽다고 했느냐며 사랑에 대한 어려움을 원망까지 섞어가며 토로하기도 했다.
클래식에 대한 정의도 사실 규정하기는 어려운 단어이다. 말의 어원을 살펴볼 것 같으면 라틴어 클라시쿠스(Classicus)에서 나왔는데 당시는 상류층 시민계급이나 최상의 물건을 뜻하는 말이었다. 형용사로 사용될 때 '최상의' '일류의'와 같은 최상급을 수식하는 의미기도 했다. 핸드백을 좋아하는 여성에게 루이뷔통, 샤넬 같은 '명품'과 같은 말이라 설명한다면 이해가 한층 쉽지 않을까 싶다.
또 축구를 좋아하는 어느 남성에게 '엘 클라시코'(El clasico: 스페인 최고의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FC의 축구대결)가 스페인어로 클래식이라 말한다면 어떤 의미인지 더 와 닿지 않을까 싶다.
언뜻 인식은 되지만 선뜻 설명하기 쉽지가 않다. 다만 클래식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쟁은 훗날에 결정된다는 점인데 신상(新商)이 클래식으로 인정받기에는 시간이 지나야 된다는 점이다. 클래식에 '고전적인' 의미가 있다는 말은 시대가 지나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어릴 때 누나들이 세칭 '배꼽티'를 많이 입었는데 지금에 사라진 것은 클래식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클래식은 장르로서 재즈, 가요와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다른 말로 놓고 보면 명품이란 말을 지갑과 셔츠와 놓고 구분하는 것과 같다. 지갑도 잘 만들면 명품이 되고 셔츠도 같은 이유로 명품이 될 수 있는데 말이다. 재즈도 가요도 훗날에는 클래식이 될 수 있다. 클래식은 그런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가치가 변하지 않고, 오히려 지날수록 가치가 더하여지는 클래식은 예술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다시 불러보는 그 노래'는 근현대가요와 동요로 우리 어른들이 살아온 시대 정서를 음악을 통해 서로 소통하는 시간을 갖자는 의미로 기획한 콘서트이다.
윤극영의 반달, 박태준의 동무 생각 등 옛 시대 노래를 현대적 요소와 재즈의 요소를 결합한 공연인데 공연 주제가 클래식의 의미를 담고 있다. 참고로 오늘(목) 오후 8시 공간울림에서 무대를 만나 볼 수 있다.
이예진(공연기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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