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속으로] 말 한마디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잘 다녀 와' '좋은 아침' '수고하세요'. 우리가 아침에 흔히 듣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그저 영혼 없는 말 한마디쯤으로 여기고 만다. 하지만 인사말 한마디 없는 아침을 떠올려 보자. 그 흔한 말 속에서 우리는 생활의 감각을 회복하고 가족과 친구, 동료 간의 관계를 재확인한다. 그리고 일상을 살아가는 나 자신의 존재감까지 발견한다. 말 그대로 말 한마디의 힘이다. 안부를 묻고 마음을 전하여 공감대를 형성하는 말 한마디, 말은 관계의 최고 미학이다. 누군가에게 듣는 말 한마디가 삶의 활력을 만들고 새로운 기운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말은 때론 생활 속 힘이 되기도 한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모토 마사루, 2002)란 책이 있다. 이 책은 물의 생태를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삶을 반성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 책이다. 책에는 관련된 다양한 실험 결과가 제시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물에게 말을 하고 그 결과를 결정체 사진을 통해 확인한 것이다. 그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고맙습니다'란 말과 '망할 놈'이란 욕설의 차이를 결정체는 충격적으로 보여준다. 전혀 다른 물의 결정체, '고맙습니다'와 '망할 놈'이란 말의 극명한 차이를 물은 알고 있었다. 실험은 말 한마디가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보여주는지 증명하고 있다. 최소한 몸의 70% 이상이 물인 우리 인간은 이 놀라운 차이를 다시 바라볼 수밖에 없다.

'킹스 스피치'(2010)란 영화에서 주인공의 말더듬이를 치료하는 라이오넬 로그는 1차 세계대전 중 마음의 병을 얻은 청년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통해 병을 치유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말 한마디가 세기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영화 '밀양'(2007)에서는 사람을 죽인 당사자가 스스로 신의 용서를 받았다고 여주인공 신애에게 하는 언어도단을 통해 말 한마디가 얼마나 인간에게 치명적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경상도 말 혹은 말투에 대한 말들이 많다. 경상도 말투가 개그 프로그램의 우스갯말로도 등장하고 만담의 소재로도 사용되고 있다. 생활 속에서 언어는 삶의 기본적인 표현이자 문화 인식의 전제이다. 그 속에는 지역의 생활과 의사소통의 방식, 상호 신뢰와 공동체 문화의 정서가 담겨 있다.

최근 대구경북학회에서 개최한 '대구경북 언어 세미나'는 대구경북 언어의 현재와 한계 등을 논하는 귀한 자리였다. 세미나 과정에 말 한마디가 이슈가 되었다. '그게 아이고(아니고)'란 말이었다. 일상대화 중 상대방의 말을 받으며 쓰는 말이다. 세미나는 상대방의 말을 일단 부정하는 지역의 언어 습관에 대한 걱정으로 끝이 났다. 세미나가 끝난 후에도 '그게 아니고 그게 아니고'를 자꾸 되새겨 보았다. 누군가 내 말을 끊고 '그게 아이고'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영화 '일 포스티노'에서 순수한 청년 주인공 마리오는 사랑하는 베아트리체를 위해 망명 시인 파블로에게 시를 배운다. 가난한 바닷가 어촌의 한 청년이 시를 배우고자 하는 진정한 마음, 그것은 말 한마디가 지닌 진정한 가치를 설명한다. 그 속에는 은유가 존재하는 이유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말이 존재하는 이유가 담겨 있다.

연말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정리하는 계절이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로 이어진 한 해였다. 우리는 과연 지난 한 해 동안 어떤 말을 했으며 어떤 말을 들었을까. 혹시 아프거나 상처가 되는 말로 한 해를 산 건 아닐까. 주위 사람들과 속 깊고 따뜻한 말 한마디쯤 나누고 살았을까. 반문해 본다. 연말 인사를 자주 하는 계절이다. 혹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에게 따뜻한 마음이 담긴 은유의 말 한마디는 어떨까. 당신을 생각하면 저 앞바다의 파도처럼 가슴이 뛴다고 베아트리체에게 말하고 있는 '일 포스티노'의 마리오처럼 말이다.

박승희/영남대 교수·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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