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한의학/ 이상곤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조선의 네 번째 왕 세종은 걸어다니는 종합병동이었다. 안질, 임질, 소갈(당뇨병), 풍습(관절염) 등 온갖 질병으로 고생했고, 말년에는 강직성 척추염으로 추정되는 치명적인 병으로 괴로워했다. 세종은 결국 중풍으로 추정되는 심혈관계 질환으로 50대 중반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세종의 병은 조선 개국 정치사의 산물로 해석된다. 아버지 태종과 어머니 원경왕후의 정치적 및 사적 갈등, 재위 초반 10년 가까이 왕실을 덮친 줄초상의 비극, 그리고 세종의 워커홀릭형 업무 습관이 결합해 병을 키웠다는 것이다. 세종이 병으로 얼마나 고생했는지는 조선왕조실록에 잘 나온다. 세종은 온천 마니아였다. 눈병인 안질 치료를 위해 한양 인근 효험이 좋은 온천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온양온천이 효험을 보이자 온양현을 온양군으로 승격시켜줄 정도였다. 성리학 나라의 기초를 다진 성군이라기에는 다소 의아한 모습도 보였다. 병을 고치려 사찰에 가서 약사불에 빌고, 도가의 기문둔갑술을 썼으며,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굿)도 했다.
살펴보면 조선의 왕들은 대부분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질병으로 고생했다. 중풍으로 죽은 태조부터 심장병으로 죽은 27대 순종까지. 특히 세종은 "한 가지 병이 겨우 나으면 한 가지 병이 또 생기매"라고 탄식했고, 현종은 "오장이 불에 타는 듯해 차라리 죽고 싶다"고 고통을 호소했으며, 사림과 왜란의 시대를 살며 서자 콤플렉스까지 가졌던 선조는 정신적 스트레스로 "왕 노릇 하다가 미칠 것 같다"고 비명을 질렀다. 반면 83세까지 장수한 영조는 어릴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한약을 달고 산 약골이었지만 자기 체질을 정확히 파악해 늘 질병에 대비했다. 특히 인삼을 사랑했고, 제때 식사를 했다. 아들 사도세자를 굶겨 죽일 때도 자기 식사는 챙길 정도였다.
전제 왕정 국가에서 왕의 건강관리는 국가의 핵심 정책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종기는 막중한 위기관리 대상이었다. 문종은 종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죽었고, 효종은 종기 치료 중 과다 출혈로 목숨을 잃었으며, 정조는 개혁 정치 추진 중 종기가 도져 역시 생을 마감했다. 이는 곧바로 쿠데타, 북벌정책의 좌절, 개혁정치의 쇠퇴, 그리고 왕조 멸망의 가속화를 만들었다. 왕이 건강했다면, 조선의 역사도 바뀌었을 것이다. 저자 이상곤 한의학 박사는 "왕의 육체는 곧 조선 왕조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바로미터가 됐다"며 "역사학에 한의학의 관점을 더해 조선 왕조 역사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대구한의대 교수, 한의사 국가고시 출제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 서초갑산한의원 원장, 한방 안이비인후피부과학회 상임이사로 있다. '낮은 한의학'과 '코, 음기로 다스려라' 등의 저서를 펴냈다. 439쪽, 1만7천원.
황희진 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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