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영화계는 지난해와의 연장 선상에서 전망된다. 영화 역사가 보여주듯이, 사회가 어려움에 봉착하면 영화계는 활황이 된다. 1930년대 대공항 시기에 할리우드는 전성기를 구가했고, IMF 시기에 한국영화는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경제 위기가 오랫동안 지속되고 사회적인 혼란상이 여전할수록 사람들은 무언가로부터 위안을 얻고 싶어하거나, 혹은 현실을 잠시 잊고서 환상 세계로 탈출하고자 한다. 울분의 감정을 어디엔가 폭발하고 싶어 하거나, 현실에는 없지만 영화 속에서 그려진 완벽한 인물이나 세계를 보며 희망을 찾고 싶어 한다. 영화가 가진 오락, 위안, 예술, 감정 해소의 기능이 위기의 시대에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다. '변호인' '명량'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국제시장'으로 이어지는 눈물과 감동은 무시할 수 없는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의 예술적 완성도와 별개로 흥행영화가 가진 사회적 영향력은 재평가되어야 마땅하다.
지난해 영화계의 중심 키워드는 '사극' '독립영화' '사회고발' 등이다. 여름, 겨울 극장가 성수기의 흥행코드로 사극이 자리를 굳건하게 하고 있고, 재미와 의미를 챙긴 독립영화가 안정적인 텃밭을 가꾸고 있다. 을의 입장에 선 사람들은 더 서러워지고 갑의 횡포는 더 기승을 부리는 사회분위기를 혁파하려는 사회고발 영화들이 꾸준하게 호응을 얻고 있다.
영화라는 문화상품은 다른 유행상품처럼 예측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문화란 감정에 기반하고 있으며, 인간의 감정은 여러 가지 자극과 돌발변수로 인해 수시로 변하므로 예상을 한다는 게 어찌 보면 허무맹랑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가 진행하는 일정한 흐름이 있고, 영화는 당대 사회와 동시대인의 의식과 무의식을 투영하는 척도가 되므로 한 해를 미리 점쳐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2015년 영화계 키워드를 '사극' '복고' '유명감독들의 귀환'으로 놓고 싶다.
◆사극
'사극'은 한국영화의 첫 번째 르네상스 시기였던 1960년대 중후반에 활발하게 제작되기 시작하다가 유신시대였던 1970년대에 국책성 영화로 전락했다. 한국영화의 암흑기라고 불리던 1980년대에는 자취를 감추었다가 1995년에 만들어진 '영원한 제국'이 비평적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새로운 사극의 시대를 예고했다. 그러다가 2005년 '왕의 남자'가 예상치도 못한 흥행 돌풍으로 1천만 관객을 동원했고, 이 영화의 몇 가지 관행이 사극 장르 코드로 확립되었다. 기록된 정통역사에 허구의 서민 이야기를 배합하고, 계급을 뛰어넘는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의 층위를 복잡하게 구성하며, 화려하고 세련된 비주얼을 구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2012년 '광해: 왕이 된 남자' 이후 본격적으로 극장 성수기 흥행코드로 사극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2013년의 '관상'과 2014년의 '명량' '군도' '역린' 등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장르 코드와 함께 인기 있는 스타 배우 군단의 멀티캐스팅이라는 요소가 더해져 박진감과 볼거리를 더한다.
이러한 사극 열풍의 근저에는 지난 몇 년간 역사 교과서 논쟁을 둘러싸고 벌어진 역사 바로 보기 운동이 널리 확산된 것과도 궤를 같이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 역사를 바로 알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었는데 이를 통해 대중은 역사의 중요성을 인지하게 되었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위기의 시대에 역사 속 위인을 찾아내어 그에게서 현실을 극복할 영웅의 모습을 보게 된다는 점이다. 현실이 불안할수록 더욱 과거의 영웅에 집착하게 된다. 리더십의 공백이 여러 곳에 드러나는 지금, 역사 속 영웅을 소환하여 현실 소망을 그에게 투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되어 버렸다.
올해 공개될 사극으로 이준익 연출, 송강호 유아인 문근영 주연의 '사도', 박흥식 연출, 전도연 이병헌 주연의 '협녀: 칼의 기억', 최동훈 연출, 전지현 하정우 이정재 주연의 '암살', 박훈정 연출, 최민식 주연의 '대호', 류승룡 수지 주연의 '도리화가', 신하균 장혁 주연의 '순수의 시대', 김명민 오달수 주연의 '조선명탐정2' 등이 있다.
◆복고
'복고'라는 것은 퇴행적 의미를 지니는데, 더 이상 문명의 발전을 꾀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향수 어리게 과거를 기억하며 그곳을 탈출구로 삼아 현실의 고통을 회피하고자 하는 무의식적 욕망이 담겨 있다. 반면, 복고는 촌스러워서 재미있고, 독특한데다 경쾌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전통과 뿌리를 연상케도 한다. 2011년 '써니'와 2012년 '건축학개론'이 성공하면서 대중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했고, 2013년 '응답하라' 시리즈는 상업적 복고 문화를 더욱 촉진시켰다. 정치적 분위기가 과거로 흐르고 있는 지금, 추억을 대책 없이 그리워하며 가짜 신화를 공고히 하는 방식을 경계해야 할 때이지만, 가까운 과거의 유산이 지금의 복잡한 사정을 만들었다는 명확한 역사관을 바탕으로 복고를 재현해낸다면 이는 환영할 일이다. 복고는 하나의 볼거리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모순을 잉태한 곳이라는 반성적 사유 안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다. 2014년 '인간중독'과 '봄'이 1960년대 말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았으며, 1950년대부터 1980년대를 환기하는 '국제시장'이 현재 흥행하고 있다.
올해는 복고영화를 더 많이 만날 것 같다. 그중에서도 1960년대 말 1970년대를 시대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많다. 영화에서 재현된 유신시대를 지금 시점에서 재고해볼 때이다. 하정우 연출, 하지원 하정우 주연의 '허삼관', 곽경택 연출, 김윤석 유해진 주연의 '극비수사', 유하 연출, 이민호 김래원 주연의 '강남 1970', 김현식 연출, 김윤석 정우 김희애 주연의 '쎄시봉' 등이 기대된다.
◆유명감독
박찬욱, 강제규, 임상수, 류승완, 나홍진 감독 등이 신작을 계획 중에 있어 이들 영화들의 세계영화제 진출과 국내 흥행 여부가 관심의 초점이 될 것이다. 독특한 영화적 개성을 유지하며 자신만의 영화세계를 통해 감독 이름만으로도 브랜드를 구축한 이들이 내놓을 신작이 대기업 중심의 오락 상업영화가 주도하고 있는 한국영화계에 경종을 울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가영화가 점차 쇠퇴하고 마케팅 중심의 기획영화로 식상해지는 지금, 그에 대한 대안으로 많은 관객은 다양성 영화에 눈을 돌렸다.
◆다양성
비슷비슷한 상업영화들의 틈바구니에서 '한공주' '도희야'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비긴 어게인'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 '그녀' 등 다양성 영화의 성공은 그 어느 해보다도 눈이 부셨다. 이 현상은 올해도 지속될 것으로 예측된다. 철저한 기획과 마케팅을 기본으로 하는 대기업 주도의 영화제작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관객의 다채로운 입맛에 대한 열망은 계산되지 않은 날것의 감각을 살려낸 다양성 영화로부터 채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2009년 '워낭소리' 이후 5년 만에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독립영화 신화를 이어갔는데, 독립영화 열풍은 꽤나 긴 시간적 차이를 두고 발생하는 우연적인 사건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진정성이나 질적 콘텐츠의 승리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5년 사이에도 매우 훌륭한 독립영화가 많았다는 사실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지슬' '명왕성' '파수꾼' '북촌방향' '시' '똥파리' 등은 영화적 완성도, 영향력과 화제에 비해 흥행 면에서 다소 아쉬웠다. 안정적인 배급 시스템이 해결책이지만 여전히 요원한 일이어서 다양성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은 영화를 보기 위해 더 많은 수고를 기할 수밖에 없고, 독립영화인들은 개별 돌파, 각개 약진 전략으로 이겨내야 하는 상황이다.
올해는 질적, 내용적으로 더욱 풍성한 영화계를 기원하며,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편안한 나라가 되길 소망한다. 우리 모두에게 복된 한 해가 되기를 빈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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