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주택가를 둘러볼 때가 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특별한 것은 아닐진대 가끔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는 부분이 있다. 기와다. 물론 주택가 곳곳에 남아 있는 한옥에서 기와는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부분이다. 그러나 다세대 주택의 옥상을 둘러싼 기와는 한편으로 다른 생각을 떠오르게 하는 측면이 있다.
우선 건물의 지붕과는 무관한 경우가 많다. 옥상이라는 공간이 지붕 대신 건물의 효율을 선택한 까닭이지만 기와의 원래 용도가 지붕이라는 점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백여 년 전 축조된 근대 건축물만 하더라도 기와로 지붕을 덮은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오늘날 주택가에서 일련의 단독 주택들을 제외한다면 이런 모습을 마주하기란 쉽지 않다. 간혹 옥상 담벼락을 꾸미고 있는 기와들로부터 정수리는 벗겨진 채 주변만 남은 머리칼을 연상하게 되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색깔 또한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최근 주택가에서 볼 수 있는 기와들은 먹색으로 이루어진 지붕과는 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형형색색의 광경을 이루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 붉은 벽돌색이거나 주황 또는 파란색을 띠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간혹 먹색 계통의 기와를 만날 때도 있지만 그야말로 간혹 이다. 교외로 벗어나면 이러한 색깔의 폭은 더욱 좁아진다. 기와에 대한 특정한 수요 때문이라기보다는 일관된 공급으로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전통적인 건축 요소의 이러한 변모는 결국 오늘날의 생활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로 인해 기와가 지니고 있는 곡선과 절제의 아름다움이 다소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주택가에 자리한 기와로부터 단아함을 이야기하기 힘든 이유다. 현대적인 관점에서도 섣불리 아름다움을 말하기는 어렵다. 높고 낮은 주택가의 건물들 사이에서 소위 멋진 장식으로서의 기와를 마주하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럼에도 이 기와들이 눈길을 끄는 것은 다름 아닌 기와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의 기와들은 전통의 방식으로 제작된 기와들과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다. 서양식 기와의 형식을 따르기도 하고 전혀 다른 재질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소위 막새라고 불리는 부분에 둥글게 장식된 연꽃무늬나 기와들의 전체적인 형상으로부터 전통의 영향을 발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왜 하필 기와인가.
단순해 보이는 이 물음은 때로 깊숙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주택가의 기와들에서도 볼 수 있듯 전통은 반드시 아름다운 모습만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한편으로 전통이란 그 이전에 무의식적으로 발현되기도 하는 문화다. 이러한 발현의 형태가 불현듯 오랜 힘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그것은 삶의 측면이기도 한데 기와 아래 펼쳐진 가구들의 모습도 그렇지만 이들 앞에서 아름다움이라는 기준이 무색해질 때도 있다.
이승욱 월간 대구문화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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