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설 연휴 영화들

긴 연휴 취향 따라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진정한 2015년이 시작되는 '설날!'이다. 5일간의 연휴라는 이른 봄의 선물 같은 시간이다. 이번 연휴 극장가와 TV 채널을 통해 선보이는 다양한 영화들의 향연 속에서 다채로운 감정의 면면들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영화들 중 취향에 맞는 것을 골라 보면서 영화의 맛을 깊이 있게 느껴보자.

▷흥행 성적표

흥행 순위 꼭대기에는 할리우드 액션영화와 우리 코미디영화가 자웅을 겨루고 있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는 새로운 스파이 액션물로, 오스카 수상에 빛나는 콜린 퍼스가 21세기형으로 진화한 여유 있고 신사적인 스파이의 전형을 만들어낸다. 매튜 본 감독의 비주류적인 감각이 영화 끝까지 유지되어, 관객은 어디로 흐를지 모를 이야기와 장면에 박장대소하게 된다. 이것이 이 영화가 지닌 미덕이다. 다만 잔인한 폭력 묘사 때문에 청소년관람불가라 어른들만 이런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게 아쉽다.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은 온 가족이 즐기기에 손색없이 잘 만들어진 오락영화이다. 조선명탐정 '김민'은 조선판 셜록이라는 캐릭터로서 입체적으로 잘 만들어져 앞으로 썩 괜찮은 한국적 캐릭터 브랜드로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걸출한 개성과 허를 찌르는 상황 연출이 크게 돋보이지는 않지만 가족영화로 무난하다.

코믹 범죄물 '모데카이'가 이번 주에 개봉해 흥행전선에 뛰어든다. 예술작품 딜러이자 미술광인 모데카이(조니 뎁)는 한때 잘나가는 귀족이었으나 현재는 재정난으로 파산 직전에 놓여 있다. 때마침 그의 대학 동창인 마트랜드(이완 맥그리거)로부터 복원 도중 사리진 고야의 명작 '웰링턴의 공작부인'을 찾아오라는 제안을 받는다. 모데카이는 하인과 그림의 행적을 따라가던 중 그 속에 나치의 비밀 계좌번호가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되고, 이 때문에 러시아 집권층은 물론 이슬람 테러리스트, 중국 마피아, 예술품 밀매업자, 미국 최고의 억만장자까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인다.

'쎄시봉'도 복고풍 향수를 자극하며 가족 관객을 부른다. 즐겁고 유쾌하지만 약간은 우울한 감정을 일으키며, 특히 젊음과 나이 들어감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명절에 어울리는 영화다. 젊은 남자배우 투톱의 연기 헌신이 눈에 들어오는 '강남 1970' 역시 설 연휴 마지막 사력을 다할 것이며, 이미 1천3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한국영화 흥행 2위를 기록한 아버지 영화 '국제시장'이 설 연휴를 통해 관객과 이별을 준비한다.

▷어린이 영화

올해 아카데미영화제 장편 애니메이션상 후보로 오른 착한 로봇 이야기 '빅 히어로'는 흥행 순항 중이다.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슈퍼 히어로 캐릭터는 디즈니 영화답게 사랑스럽다.

재패니메이션 '도라에몽: 스탠 바이 미'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도 눈물짓게 한다. 도라에몽이 1969년 탄생했으니 이미 마흔 살을 훌쩍 넘겼다. 미래에서 온 외계 친구 도라에몽이 지구 어린이와 맺는 순수한 우정은 마음을 따뜻하게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작별은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웃고 울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애니메이션이다.

어린이 관객에게 이번 주 강력한 다크호스가 될 애니메이션 '스폰지밥 3D'가 개봉한다. 세계적인 메이저 스튜디오 파라마운트가 제작하였으며, '쿵푸 팬더' '개구쟁이 스머프' 시리즈의 흥행메이커 제작진이 참여했다. 한국인 애니메이터 300여 명이 제작진으로 활약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게살버거는 비키니 시티의 최고 인기 메뉴다. 어느 날, 게살 버거의 특급 레시피가 사라지자 비키니 시티는 혼란에 빠진다. 스폰지밥과 친구들은 해적 버거수염에게 특급 레시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레시피를 되찾기 위해 인간 세상으로 모험을 떠나게 된다. 슈퍼 히어로 스폰지밥의 인간 세상을 향한 모험에는 상상 이상의 웃음이 넘쳐난다.

▷아카데미 후보작

22일(미국 현지 시각)에 개최될 제87회 아카데미영화제의 후보작들을 만나는 기회도 놓치지 말자. '보이후드'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 '아메리칸 스나이퍼'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 이미 개봉 시기가 끝났고, 수상이 유력한 '버드맨' '위플래쉬'가 아카데미 이후로 개봉 시기를 잡으며 아카데미 마케팅으로 승부하려 하고 있는 가운데, 연휴 기간에는 세 편의 아카데미 후보작인 훌륭한 예술영화와 만날 수 있다.

'이미테이션 게임'은 영국 드라마 셜록 홈즈 역할로 스타가 된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실존 인물을 섬세하게 연기한다. 매 초당 3명이 죽는 사상 최악의 위기에 처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절대 해독이 불가능한 암호인 독일군의 에니그마로 인해 영국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 각 분야의 수재들을 모아 기밀 프로젝트 암호 해독팀이 가동되고,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베네딕트 컴버배치)은 암호 해독을 위한 특별한 기계를 발명하지만 24시간마다 바뀌는 완벽한 암호 체계 때문에 번번이 좌절하고 만다. 앨런 튜링은 끝내 암호를 풀고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주역이 되지만, 그는 법의 처벌 대상이 된다. 1950년대까지 동성애는 범죄였기 때문이다. 까탈스러우며 예의라곤 밥 말아먹은 천재가 왜 더 고독한 삶을 살았는지를 그의 사생활과 기억을 엿보면서 알게 된다. 영화는 차별과 선입견이 얼마나 폭력적이며 세상을 후퇴시키는지 생각하게 한다. 컴퓨터 창시자인 앨런 튜링이 애플사 로고로 유명한 한입 베어 문 사과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스티브 잡스는 그에 대한 열렬한 존경을 디자인으로 보여주었다. 아카데미 영화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각색상 등 주요 부문에 후보로 오른 수작이다.

아카데미영화제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후보로 오른 폴란드 영화 '이다'는 뛰어난 촬영술을 보여준다. 고아로 수녀원에서 자란 안나는 수녀가 되기 직전, 유일한 혈육인 이모 완다의 존재를 알고 그녀를 찾아간다. 이모가 안나에게 그녀가 유대인이며 본명이 이다라는 이야기를 전하자, 안나는 혼란에 빠진다. 디지털이 아닌 흑백 필름으로 촬영하여 자신의 뿌리 찾기라는 예민하고도 혼란스러운 감정을 매우 세심하게 포착해 내었다. 영화의 뿌리가 사진임을 선포하며, 시각예술로서의 질을 획득해야 함을 영화는 신중하게 표현한다. 세계예술영화계가 이 영화로 폴란드영화의 부활을 목격하며 반가워했다는 후문이다.

아카데미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에 후보로 오른 '폭스캐처'는 레슬링 올림픽 챔피언을 총으로 쏜 미국 갑부의 실화를 그린다. 신자유주의의 서막을 올린 레이건 시대 미국의 명암과 함께 아메리칸드림의 허망함을 날카롭게 공격하는 뛰어난 스릴러 예술영화이니, 극장가에서 만날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길 바란다.

▷가족용 영화와 TV 영화 등

가족영화로서 손색없는 작품들이 여러 편 있다. 슬로 푸드, 소울 푸드의 효과를 체험할 일본영화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 '언터처블: 1%의 우정'의 감독과 배우가 다시 만나 즐거운 다문화 세상을 꿈꾸는 프랑스 영화 '웰컴, 삼바'가 개봉한다. 다양성 영화의 취약성을 고발하며 잘 만든 우리 가족영화의 선전을 무조건 응원하게 하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도 여전히 극장가에 걸려 있고, 먹방 다큐멘터리 '아메리칸 셰프'도 선전하고 있다.

TV에서 방영되는 영화 라인업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상영되며 한국영화의 힘을 확인한 '끝까지 간다'는 절대로 놓칠 수 없는 기회이며, 지난해 최고 화제작인 '수상한 그녀'와 '역린'도 있다. '광해, 왕이 된 남자'와 '더 테러 라이브'는 다소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는 배우 이병헌과 하정우의 몇 해 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극장에서 관람 기회를 놓친 예술영화가 방영된다는 반가운 소식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자전거를 타는 사우디아라비아 소녀의 고군분투를 그린 위대한 작은 영화 '와즈다', 고전 단편을 각색한 따스한 감수성의 한국 애니메이션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중국 장이머우 감독의 저력을 확인하게 해준 공리 주연의 '5일의 마중'은 설 연휴를 더욱 풍성하게 해줄 것임에 틀림없다.

모두 해피해피 설 연휴!

정민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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