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아베는 메르켈 총리의 충고 따라야

며칠 전 일본을 방문한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과거를 똑바로 보라"며 일침을 가했다. 한'일 간의 역사 갈등을 풀려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지극히 당연한 지적이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발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독일과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의 주범이다. 하지만 독일과 일본의 역사적 책임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달라 보인다.

메르켈은 독일이 범한 역사적 과오에 대해 "항구적인 책임을 진다"고 했다. 유럽의 화해는 독일이 과거를 똑바로 마주 보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했다. "과거의 일을 완전히 매듭짓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항상 과거와 마주 보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충고했다. 이는 아베 총리를 비롯한 우익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한'일 청구권 협상을 통해 법적으로 이미 종결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것이다.

일본도 1993년 고노 담화를 통해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하고 사과한 적이 있다. 그리고 2차 대전 종전 50년이 되던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 태평양 전쟁 당시 주변국에 대한 식민 지배와 침략을 사과한 바 있다. 무라야마 담화는 일본의 식민 지배를 가장 적극적으로 사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이후 잘 계승되지 않았다. 더구나 아베는 오히려 일본이 피해자인 것처럼 역사를 왜곡하여 주변 피해국들은 물론 세계를 자극하고 있다. 2012년 집권 이후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참배하고, 독일에 가서는 "일본은 독일식의 화해와 사과 방식을 따를 수 없다"고도 했다. 미국 공립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위안부 관련 내용을 보고는 "정말로 경악했다"며, 수정 요구를 하겠다고 하였다. 한'일 간의 독도와 중'일 간의 댜오위다오(釣魚島) 영유권 분쟁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아베가 전후 70년인 2015년 8월 15일 미래지향을 강조하는 담화문을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무라야마 전 총리는 "과거와 미래는 떼어 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반성에 입각해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고 한다. 일본을 방문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16일 NHK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지도자가 보다 대국적인 미래지향 비전을 가짐으로써 역사 인식을 둘러싼 대립이 최대한 조기에 해소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베는 이러한 충고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여름 인류 최초의 원폭 투하지인 히로시마를 방문한 적이 있다. 히로시마에는 원폭 피해의 참혹함을 경각시키기 위한 원폭 돔 잔해와 평화의 불꽃, 각종 위령비(한국인 희생자 위령비는 안내도에 표시가 없어 찾기가 어렵다), 평화기념 자료관이 있다. 평화기념 자료관에는 원폭 피해로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사람들의 처참한 사진, 녹아버린 기와와 유리, 폐허가 된 히로시마 모형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참사의 근본 원인인 일본의 전쟁 책임은 뒤로한 채, 마치 자신들이 피해자인 양 일본의 피해상만 잔뜩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곳을 방문하는 일본인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자칫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겠다는 우려가 들었다. 생각 끝에 방명록에 불이병 강천하(不而兵 强天下: 무력으로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 인류평화(人類平和)라는 메시지를 남겨 두었다.

최근 아베가 취하는 일련의 행태를 보니 이러한 우려가 기우만은 아닌 것 같다. 오죽하면 아베를 역사 왜곡의 일인자, 메르켈을 속죄의 모범자라고까지 하겠는가? 총리의 인식이 이러한데 일본 국민들의 인식은 과연 어떠할지 궁금할 따름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아베는 독일 메르켈 총리의 충고를 받아들여 과거사를 진심으로 사죄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 바란다.

조영남/대구교대 교수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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